하버드대 라인하트·로고프 교수, 블룸버그 인터뷰

2009년 말 하버드대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금융위기의 역사에 대한 주목할 만한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이번엔 다르다 : 지난 8세기 금융의 어리석음'. 반어적이었다. 각국의 정책당국과 시장 참가자들이 '이번에는 다를 것'(위기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해온 태도를 꼬집는 내용이었다.

두 교수는 독자들에게 '2008~2009년 신용위기는 과거에 비해 전혀 독특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들은 책에서 "각국의 디폴트와 불황, 뱅크런, 외환 투매, 인플레이션 급등과 같은 사건은 예측가능한 패턴의 일부"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사진 왼쪽)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전 세계는 독특한 위기를 겪고 있다. 전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에 직면했다. 전례없는 재정·통화정책이 동원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올해 전 세계 경제가 3% 위축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 "전망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라인하트, 로고프 교수는 19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는 과거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번엔 다를까

라인하트 교수는 "팬데믹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각국의 대응조치는 아주 새롭다"고 지적했다. 1918년 미국의 실질 GDP성장률은 9%였고, 전시생산체제였다. 지금은 경험할 수 없다. 그게 한 가지 차이점이다. 정책적으로는 경제봉쇄로 대응하고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속도다. 지난 6주 동안 미국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급증했다. 과거엔 60주가 걸렸다. 3월 한달 동안 신흥국에서의 급격한 자본유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1년에 걸쳐 일어났던 것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급작스러움과 광범위한 봉쇄·격리는 이전엔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는 위기의 범위에 주목했다. 그는 "대공황 이후 사실상 첫 번째 글로벌 불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는 부유한 국가에 집중됐다. 신흥국에겐 오히려 '좋은' 위기였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세는 나라별로 다르겠지만, 경제 피해는 동시다발적이다.

경제회복, 어떤 모습일까

최근 증시 움직임은 실물경제와 다르다. 이에 대해 라인하트 교수는 "통화정책이 시장의 움직임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이전 미국 실업률은 1960년대 이래 최저치였다. 완전고용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향후 경로는 금리가 올라가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 매우 확실했다.

하지만 이젠 기한을 알 수 없는 장기간 동안 초저금리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로 완전 대체됐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유동성 지원 때문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거대한 게임체인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경제가 V자 회복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정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는 "시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매우 낙천적"이라며 "시장은 V자형 회복을 믿고 있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파산전문 변호사들의 일감이 전 산업에 걸쳐 매우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하트 교수는 "코로나19 충격은 공급망과 무역을 전 세계적으로 망가뜨린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이 13~32% 하락할 것이라고 본다. 공급망은 기존 것을 깨고 즉시 다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제침체는 동시다발적이지만, 코로나19 확산은 동시다발적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지리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2차 파동이 온다면, 경제회복은 W자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로고프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가장 긍정적인 생산성 충격은 기술발전을 겸비한 세계화였다"며 "코로나19가 세계화를 앗아간다면, 기술발전의 일부도 앗아간다. 그러면 사회정치적 파문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환자가 병원에 쇄도하면 통제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드는 것처럼, 국가나 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파산과 디폴트에 직면하면 IMF도, 파산법11조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며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위해 부채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대전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위기에서 회복되는 기간은 평균 4년이었다. 대공황의 경우 10년이었다. 그는 "우리가 지난해의 1인당 GDP로 돌아가려면 얼마의 기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5년 정도만 돼도 아주 좋은 결과"라며 "글로벌 경제회복의 모습은 기껏해야 U자형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 부채 문제

수많은 신흥국이 원자재 충격에 직면했다. 특히 국제유가 문제가 심각하다. 나이지리아와 에콰도르 콜롬비아 멕시코 등 모두 신용등급이 낮아졌다.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는 특히 심각하다.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는 이미 디폴트 상황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이들 국가는 신흥국 중 규모가 큰 나라"라며 "전 세계 경제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중엔 이탈리아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2010년대 초 부채문제로 고통받은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합쳐봐야 이탈리아 GDP의 1/3을 약간 넘는 수준"이라며 "이탈리아 위기가 심화되면 유로존을 해체하는 힘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고프 교수는 "나는 2010년대 초 유럽 남부국가들 문제의 해법으로 부채탕감을 주장했다. 유로존 성장을 위해 저렴한 비용의 해결책이라고 봤고, 만약 시행됐다면 탕감액보다 큰 혜택을 돌려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2년여 동안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적인 고통에 더해 유로존이 요구하는 더 충격적인 긴축정책을 강제 받을 수 있다"며 "이는 유로존을 해체시킬 거대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의 레버리지 문제도 지적됐다. 라인하트 교수는 "그동안 중국은 수출주도 성장을 추진했다. 중국이 달성한 두자릿수 경제성장률의 상당수는 믿을 수 없이 거대한 설비투자에서 기인했다. 또 중국 기업들은 두자릿수 경제성장률을 상수로 보고 상당한 부채를 쌓았다"며 "하지만 이제 그런 성장은 어렵다. 수많은 산업부문에서 과잉설비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인플레이션은 5%가 넘는다. 돼지고기 값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중국 인민은행이 인플레이션 우려에 신용부양책을 쓰는 데 주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국제유가 붕괴 상황이 이를 상쇄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부양책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역할

경제위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건 재정정책이다. 하지만 재정부양책이 입법부를 신속하고 온전하게 통과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때문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자산의 증감을 통해 재정부양책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로고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사실상 중앙은행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중앙은행이 재무제표의 변화를 줄 때는 정부의 대리인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국채의 만기구성 변화나 순수한 양적완화, 장기채권이나 모기지, 기업채권, 지방채 등의 매입, 민간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 등이다.

한편 그는 "미국에 마이너스금리가 도입됐다면 귀중한 통화정책 도구가 됐을 것"이라며 "지자체와 기업에 도움이 됐을 것이고, 파산법정에 가는 기업들의 숫자도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는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할 상황이 아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라인하트 교수는 마이너스금리와 관련, 로고프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처럼 시장이 망가지고 있을 때, 또 유동성이 부족할 때엔 마이너스금리보다는 연준이 현재 취하고 있는 직접 신용 제공 방법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며 "유럽에서 마이너스금리를 지속하면서 수많은 은행들이 중개능력을 빼앗겼다. 이는 결국 규제를 덜 받는,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자 금융기관들을 양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라인하트 교수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는 "중앙은행은 1, 2차 세계대전 동안 정부의 수족이었다. 세계대전 와중에 중앙은행 독립성을 꺼내들었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라며 "위기의 시대, 재정과 부채는 통화정책과 분리할 수 없다. 중앙은행들은 이번뿐 아니라 2008~2009년 위기에도 사실상의 재정정책을 썼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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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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