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의혹 '공시가격 적정성' 감사 안 해 … 감사원 "자문에 따라 감사대상에서 제외"

1990년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제도가, 2005년 주택에 대한 가격공시제도가 도입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공시제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없었다. 감사원 스스로 부동산 가격공시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초의 감사라며 이번 감사를 평가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결과는 핵심을 비켜갔다. 공시가격과 시가와의 심각한 격차 문제, 법적 근거 없는 축소공시 문제, 국민적 관심이 높고 이의제기가 가장 많았던 아파트를 감사대상에서 빼놓은 문제가 그것이다.

◆ 아파트배제는 알맹이 빠진 감사 = 부동산공시가격에 대한 감사원 첫 감사는 시민단체인 경실련의 감사청구로부터 비롯됐다. 경실련은 지난해 2월 감사청구서에서 '정부가 매년 주택과 토지가격을 조사해 공시하고 있지만, 시세보다 크게 낮아 공평과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부동산의 적정가격을 공시하지 못한 국토교통부장관의 직무유기 △표준지와 표준주택의 적정가격을 조사평가하지 못한 한국감정원과 용역수행기관의 직무유기 △공시지가 축소로 세금징수 방해 및 재벌 등의 부동산투기조장 행위 등 세가지 감사청구를 했다.

국토부가 매년 작성해 배포하는 '공동주택가격 조사산정 업무요령'에 따르면, 한국감정원의 직원이 산정한 공동주택 가격은 무려 8단계에 걸쳐 검증, 심사, 그리고 심의절차를 시행한다. 이 단계를 모두 거치고도 초고가 아파트 '갤러리아포레' 2개동 230가구 공시가격이 엉터리로 공시된 사실이 드러나, 국토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연관세대 정정' 명목으로 정정했다. 철저한 감사가 필요한 사항임에도 감사원은 아파트 공시가격 감사를 국토부에 위임했고, 국토부는 감정원 실무자의 업무실수로 결론내렸다.


감사원은 "국토부장관 직무유기 관련 사안은 정책적 판단에 관련된 것으로 감사로서 접근하기 부적정해 제외했다"며 표준지와 표준주택 관련 사항만 감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감사원은 "감사인력과 기간에 한계가 있어 아파트는 감사범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공시 논란의 중요성에 비춰 인력과 기간을 더 투여해 감사를 할 수 있음에도 아파트를 감사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과세건수, 이의신청 아파트가 가장 많아 = 부동산가격공시와 관련해 가장 관심이 많고, 논란이 큰 것은 단연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이다. 왜냐하면 아파트는 주로 개인이 소유하고, 재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기 때문이다. 2018년 행정안전부의 지방세연감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있는 토지, 단독주택, 아파트 중 과세건수는 아파트가 약 1306만건(43.3%)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아파트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서울시의 경우, 아파트 재산세 부과건수는 281만건으로 토지(71만건)나 단독주택(48만건) 보다 월등히 많았다.

부동산공시가격이 부적절하다는 이의신청 역시 아파트가 월등히 많은데 아파트가 감사에서 제외돼 알맹이 빠진 감사라는 지적이 일었다. 감사청구가 있었던 2019년 공동주택에 대한 이의제기 건수는 4만4992건으로 토지(4만905)와 단독주택(7965) 보다 많았고, 2018년 2407건보다 무려 18.7배 증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감사원 감사에서 아파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외됐다.

◆ 갤러리아포레 집단정정 '유야무야' = 지난해 아파트 공시가격과 관련해 단연 논란이 된 것은 국내 초고가 아파트인 '갤러리아 포레'다. 가격산정과 검증절차를 거친 2개동 230가구 공시가격을 국토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연관세대 정정' 명목으로 임의로 고쳐 논란이 됐다. 심지어 공시가격에 대한 개별통지 절차가 없어 아파트 소유자는 연관세대 정정으로 공시가격이 바뀐 사실도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

지난해 정동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법적 근거가 없는 '연관세대 정정'을 통한 공시가격 정정건수가 5만2318건에 달했다. 법적 절차인 이의신청을 통한 정정건수 2585건과 비교해 20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국토부가 아파트 공시가격을 법적 근거도 없이 '연관세대 정정' 명목으로 임의로 대규모 수정을 해 논란이 됐음에도 이를 감사하지 않았다.

국토부가 매년 작성하여 배포하는 '공동주택가격 조사산정 업무요령'에 따르면, 한국감정원의 직원이 산정한 공동주택 가격은 무려 8단계에 걸쳐 검증, 심사, 그리고 심의절차를 시행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감사원은 국토부장관이 공시권자인 공동주택에 대한 감사를 국토부에 일임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직전 실무자인 한국감정원 직원 3명의 업무소홀이라며 경고조치하는데 그쳤다.

◆핵심 비켜가고 조사절차만 지적 = 감사청구대상과 실제 감사내용도 일치하지 않았다. 경실련 감사청구 내용은 표준지와 표준주택의 가격이 적정가격이라 할 수 있는 시가보다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결과 조치사항은 가격수준과 관계없는 조사절차상 문제에 대한 개선 위주였다. 즉 △표준지/표준주택의 지역별 분포의 조정 △개별토지와 주택의 토지특성 조사내용 일치 △개별공시지가 미산정 오류 개선 △개별공시지가 검증대상 누락 개선 등이 그것이다.

경실련은 21일 성명에서 "개별부동산 가격은 국토부가 정하는 표준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에 엉터리 표준부동산 가격이 개별부동산 가격 왜곡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조사결과 2020년 기준 서울 자치구별 25개 표준지 아파트 공시지가를 조사한 결과 시세반영률이 33%였고, 2019년 거래된 1000억원 이상 고가빌딩에 포함된 표준지의 공시지가 시세반영률도 40.7%에 불과했다. 2015년 10조5천억원에 거래된 삼성동 한전부지도 표준지이지만 매각된 지 5년이 지난 2020년 공시지가는 5조원으로, 거래가의 49% 수준이다. 경실련은 "감사원은 표준부동산가격의 적정성은 외면한 채, 표본 수와 분포가 불합리하다는 형식적 감사결과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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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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