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근 국방연구원 감사

전쟁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는 사활적인 이익을 놓고 전쟁을 하게 된다. 사활적 이익이란 국가의 이익 가운데 정치, 경제 및 외교와 같은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이익을 의미한다. 한편 전승(戰勝)의 기준은 적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가 아니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지도자는 정치적 목표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국력의 제반 수단을 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정치적 목표는 전쟁 원인으로부터 도출된다. 전쟁 원인의 규명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6.25전쟁을 누가 왜 시작한 것일까? 이질문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6.25전쟁의 기원에 관한 쏜턴의 관점과 기존 관점의 차이는 무엇일까?

6.25전쟁에 관한 1970년대 중반까지의 시각, 전통적인 시각은 소련과 중국이 세계 지배 차원에서 불법적인 조직인 북한으로 하여금 서구 세계에 대항하여, 특히 한반도 유일의 합법적인 국가인 대한민국을 겨냥해 불법 남침하게 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내전(內戰)으로 보이는 베트남전쟁에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1970년대 중반 이후 6.25전쟁에 관한 수정주의적인 시각이 등장했다. 수정주의 시각은 미국의 선동에 따른 이승만의 도발에 대한 북한의 반응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시각, 미국이 세계적인 구도 아래 소련과 북한을 자극한 결과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시각 또는 순수하게 남한과 북한의 내전이란 시각으로 크게 구분된다.

전통적인 시각이 북한을 포함한 공산세력에게 6.25전쟁의 주요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반면 수정주의적인 시각에서는 미국 또는 남한에 주요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6.25전쟁 관련 소련의 비밀 자료가 해제되면서 남한과 미국의 자극이 없는 가운데 소련이 전쟁 도발을 주도했으며, 북한 김일성은 스탈린 구상을 단순 이행한 사람이란 관점이 보편화되었다, 수정주의적인 시각이 설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스탈린이 전쟁 도발을 주도했으며, 남침 계획, 시점 등 남침에 관한 모든 사항을 철저히 통제했다는 쏜턴의 관점은 어느 면에서 보면 전통적인 시각과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쏜턴의 시각 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트루먼이 스탈린의 남침 노력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같은 남침을 미국의 거대한 목적을 위해, 공산세력 봉쇄를 위한 미 국방비의 대거 증액을 위해 교묘히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이 거대한 목적을 위해 소련의 남침을 자극했다는 수정주의적인 시각과도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쏜턴의 관점은 6.25전쟁 발발과 관련해 소련뿐만 아니라 미국도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1950년 초반부터 미국이 소련의 북한군 남침 지원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준비와 관련하여 미국의 언론매체와 정부가 매우 빈번히 경고한 반면, 북한군의 남침 징후가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 초반 이후 미국은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1950년 초반부터 한국을 포기할 듯 보이는 다수의 조치를 취했으며, 북한군이 남침하는 경우 곧바로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군이 막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한국군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다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는 소련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트루먼이 이처럼 했던 것은 소련과 중국을 동시에 봉쇄하기 위한 미군 재무장 측면에서 미국이 공산세력 특히 중국과 한반도에서 장기간 동안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이들이 싸우려면 북한군의 남침이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6.25전쟁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관점 가운데 우리가 쏜턴의 관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쏜턴의 관점이 비밀 해제된 6.25전쟁 관련 사실들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쏜턴은 6.25전쟁의 기원은 물론이고 미국과 소련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를 권위 있는 자료에 입각해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소련대표 말리크의 유엔 퇴장 이유, 에치슨 연설의 의미, 트루먼이 한강 방어가 아니고 낙동강 방어를 주장한 이유, 북진 과정에서 맥아더가 낭림산맥을 중심으로 8군과 10군단으로 지휘를 양분한 이유, 이미 상당히 많은 중공군이 청천강 이북 지역에 포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상태에서 트루먼이 맥아더에게 진격을 명령한 이유 등 6.25전쟁 관련 불가사의들을 트루먼과 스탈린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 측면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날 6.25전쟁을 통한 미군 재무장으로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국가가 되었으며,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어 보인다. 여타 전문가가 6.25전쟁의 결과로 미군이 재무장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쏜턴은 미군 재무장을 위해 미국이 소련의 6.25전쟁 도발을 교묘히 이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70주년 맞이하는 6.25에 대한 재해석"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