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계자 업무수행의무 조항 삭제

고용부 "단순 문구수정, 내용은 동일"

고용노동부는 2018년 전부개정 산안법에서 안전보건관리체제 조항을 '형해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안법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62조), 안전관리자(17조), 보건관리자(18조) 조항에서 '선임'의무만 남긴 채 '업무수행' 의무를 삭제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안전관계자 선임의무만 남기고 업무수행의무를 삭제한 것은 사업주로 하여금 관계자를 선임하기만 하면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업무수행 여건조성과 지휘·감독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 조장해 제도가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하청노동자 산재예방의 핵심수단인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직무 미수행에 대해서는 과태료규정조차 두고 있지 않다. 2018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부 산업안전감독이 기업체의 안전관계자 선임 여부만을 확인할 뿐, 사업주가 이들의 업무수행여건 조성이나 지도감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형식적으로 안전관계자를 선임할 뿐, 그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명시적으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안전보건총괄책임자)는 '사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자를 선임하도록 돼 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자가 선임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개혁위원회 보고서 지적이다.
고용부 산재예방정책과 한 관계자는 "전부개정 산안법은 단순 문구수정으로 개정 전과 내용상 동일하며, 현재도 선임된 안전관리자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지 않은 경우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타 입법례에서도 관리자 등을 '선임하여야 한다'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 입법례로 소방시설법에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하여야 한다'는 조항과 건설기술진흥법에 '건설공사를 관리하기 위해 공사감독자를 선임하여야 한다'는 조항 등을 들었다.

정 교수는 "'사업주는 업무를 수행하는 안전관계자를 선임하여야 한다'는 표현과 '사업주는 안전관계자를 선임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표현은 수범자와 감독관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고 지적했다. 전자는 해당 업무를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관계자를 선임(지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후자는 관계자를 선임(지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당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고용부가 유사사례로 들고 있는 타법 또한 해당 업무가 형식적으로 수행되고, 나아가 실질적 권한이 있는 자가 안전관계자(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잘못 운영되고 있는 나쁜 사례에 해당한다"며 "그 결과 대형사고 발생 시 공사감리자와 같은 수임자(실무자)에 해당하는 사람만이 처벌되고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위임자(발주청 등)는 처벌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고용부는 잘못된 법 또는 법의 잘못된 운영으로 인해 애꿎은 사람만 처벌되고 있는 사례를 좋은 사례로 들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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