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법으론 형량 높여도 처벌 못해

고용부 반대로 처벌조항 개정 어려워

‘돈을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산재예방에 만전을 기해라.’ 대표이사가 이런 지시를 해야 실질적으로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산업안전보건법하에서는 대표이사가 이런 지시를 할 이유가 없다.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본사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 산안법이 사업주가 안전조치의무를 공장장, 현장소장 등에게 위임하면 본사 대표이사를 처벌하기 어렵게 해놓은 것이다.

회사 최고책임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안법 제15조는 사업주로 하여금 사업장의 실질적 책임자인 공장장 등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임하고, 이 사람으로 하여금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를 총괄하도록 지휘·감독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만약 지휘·감독이 불충분하여 산재예방업무를 소홀히 한 것이 확인되면 사고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법위반이 된다.

그런데 이 규정을 위반해도 과태료(500만원 이하) 부과에 그친다. 그것도 개인이 아닌 회사에 부과돼, 대기업 대표이사 등 경영진에게는 처벌로써의 강제력이 거의 없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최고책임자가 산재예방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본인도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산재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지금은 안전관계자를 선임하면 최고경영자의 책임까지 이들에게 이전되는 것으로 고용부가 잘못 이해해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안법이 제정된 1981년 이후 안전보건관리체제 위반은 형벌(벌금형)로 돼 있었다. 이를 강화해 산재예방의 실효성을 높여야 함에도, 2002년 고용노동부가 행정질서벌인 과태료로 바꿨다. 국회 전문위원이 산재사망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신중한 결정을 촉구했지만 법개정을 강행했다. 2017년 2월에도 형벌로 전환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고용부 반대로 개정이 무산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설립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안전보건관리체제 위반을 과태료에서 형벌로 전환하도록 권고했으나, 고용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고용부 산재예방정책과 한 관계자는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위반이 아닌 사업장의 자율적 재해예방을 위한 체제구축 미흡에 대한 제재는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부과할 정도의 위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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