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위반 시정조치의무,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직접적 안전조치의무도 제외 … 교육 '지도'의무 삭제

정부는 지난 2018년 1월 산업재해 사망자수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대책을 발표했다. 그해 12월 고용노동부는 핵심대책의 일환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전부개정해 '도급인 책임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개정된 산안법은 도급인(원청) 관련 규제가 크게 후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서조항 신설해 도급인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 안전조치 의무 제외(63조) △하청 노동자가 법위반 시 시정조치 의무를 강행규정에서 임의규정으로 후퇴(66조1항) △도급인의 안전보건교육 관련 '지도'의무 삭제(64조1항)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선임' 의무만 남기고 '업무수행' 의무 삭제(62조1항) 등이 그것이다.


◆도급인 의무는 파견 근거 안돼 = 가장 이상한 건 산안법 제63조 단서조항이다. 도급인에게 수급인(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필요한 안전조치 의무를 명시한 후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고 한 점이다. 단서조항을 넣은 이유에 대해 고용노동부 임서정 차관은 '지시는 할 수 있지만 불법파견 분쟁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는 취지로 법안심의과정에서 밝혔다. 하지만 임 차관의 주장은 잘못된 해석이고, 고용부의 근로기준국도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산안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규정이 법집행기관인 행정부와 법해석기관인 법원에서 제시하는 불법파견 판단지표보다 우선한다는 점은 법치주의 원칙상 당연하다.

법원도 '2005구합11951' 판결에서 산안법이 규정한 안전조치는 법정 의무이기 때문에, 수급인 근로자에게 도급인이 실시하는 안전결의대회에 참여토록 하는 것 등은 원청 사업주의 당연한 의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산안법에 규정된 도급인 의무에 해당하는 관리감독조치는 설령 이것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해 직접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법정 의무이기 때문에 파견법과 충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9년 말 고용부 근로기준국 고용차별개선과는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을 개정하며 '산안법 제63조에 따라 도급인이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의 징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산업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안전상태와 불안전행동으로 구분되고, 산업재해 발생에는 불안전행동이 관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도급인에게 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불안전행동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으로 명시한 것은 하청 노동자 보호에 크나큰 후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도급인에게 하청 노동자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 직접적인 조치를 하도록 하지 않으면서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수급인 의무 약화(?) 우려해 신설" = 한편 고용부는 본지 취재에, 국회 환경노동소위 설명(2018.12)이나 산안법 개정 설명자료(고용부, 2019.1)와는 사뭇 다른 설명을 했다. 고용부 산업안전과 한 관계자는 17일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법령상의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도록 지도 및 시정지시하는 것이 수급인의 책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단서조항을 삽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도급인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해 시정지시를 하는 것은 현재도 그렇게 하는 기업이 적지 않고 법적으로 괜찮다"고도 말했다. 도급인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시정조치가 하청의 책임을 약화시킨다는 앞의 설명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이다. 또한 그의 설명에는 수급인과 그 근로자가 다른 것도 아니고 최저기준에 해당하는 법령상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조치하고 위반 시에는 시정조치를 하도록 한 것이 어떻게 해서 수급인의 책임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다.

고용부 산재예방정책과장 출신인 정 교수는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수급인 의무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도급인 의무를 별도로 규정한 것은 도급인에게는 수급인과는 다른 역할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며 "고용부 관계자는 이러한 산안법의 취지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정조치는 당연한 도급인 의무 =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 중 법 위반 시 시정조치 의무를 강행규정에서 임의규정으로 바꾼 점도 큰 문제다. 산안법 제66조제1항은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법을 위반하면 관계수급인에게 그 위반행위를 시정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개정 전 조문은 '조치를 할 수 있다'가 아닌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강행규정이었다. 또한 시정조치 대상이 '근로자'와 '수급인'에서 '근로자'가 빠지고 '수급인'으로 축소됐다. 수급인이 산안법상의 각종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해 시정조치 하도록 하는 것은 도급인의 가장 기초적인 역할이자 도급인의 위상에 걸맞은 합리적인 의무에 해당한다. 법적 의무는 최저기준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수급인에게 법적 의무를 준수하도록 지도하고 수급인이 법적 의무를 준수하고 있지 않는 경우 이를 시정하도록 하는 것은 도급인에게 요구되는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도급인의 시정조치 의무는 영국, 독일, 일본 등 재해예방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만큼 이 의무는 도급인의 여러 의무 중에서도 핵심적인 의무이자 보편적인 의무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고용부의 설명대로라면, 고용부는 도급인의 시정조치가 수급인 책임의 방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바꾸었다.

도급인이 수급인에 대해 이러한 역할만 제대로 하였더라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서부발전 김용균 사고와 같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이미 적지 않은 도급인들이 이행하고 있는 일임에도 고용부는 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약화시킨 것이다. 또한 도급인의 지도 및 시정조치 대상에서 수급인의 '근로자'는 아예 삭제했다. 이것 역시 수급인 근로자가 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도급인은 이를 방치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실제 많은 현장에서 순찰을 통해 수급인 근로자에게 법 위반을 포함한 안전수칙 위반에 대해 지도와 시정지시를 하고 있다. 법이 기업의 현실을 견인하기는커녕 '하지 않아도 된다', 나아가 '하지 말라'고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수급인의 현장소장 등을 통해 지시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작업자가 급박한 위험에 놓여 있거나 현장소장이 근처에 없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현장소장을 통해서만 지시하라는 것은 산재예방을 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부실한 안전교육 방지수단 없애 = 도급인의 의무에서 안전보건교육을 '지도'와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중 '지도'의무를 삭제한 것 역시 도급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무력화된 사례다. 안전보건교육은 근로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지식, 기능, 의식을 높이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수단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급인은 자체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할 의지와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도급인은 사전에 수급인에게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나아가 충실하게 실시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필요할 때마다 수급인이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올바르게 하도록 지도해야만 수급인에 의한 안전보건교육의 양과 질을 담보할 수 있다.

도급인이 수급인의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원만 하고 지도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수급인이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실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없다. 이것 역시 고용부가 파견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멀쩡한 내용을 개악시킨 어처구니없는 사례로 보인다. 고용부 앞의 관계자는 "지도 의무가 폭넓고 불명확해 이를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경영계에서 위 사항들에 대해 규제완화를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고용부가 스스로 후퇴시켰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근로자 산재예방의 핵심수단인 안전보건총괄책임자도 선임 의무만 남기고 업무수행 의무를 삭제했다.(내일신문 2020년 7월 13일자 1면, 20면 참고) 이는 사업주로 하여금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선임하기만 하면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게 해, 업무수행 여건조성과 지휘·감독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 조장할 우려가 매우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진우 교수는 "산안법의 도급 관련 개악부분은 고용부가 하청 노동자 보호에 대한 실력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실효성은 따지지 않고 보여주기에 급급하니 무지가 무책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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