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절차법 안지키는 '내로남불' 고용부

"적법절차 지켜라" 개혁위 권고이행 '뭉기적'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 규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는데 목적이 있다.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사업주에게 해당 작업을 중지시켜 산재발생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것이 작업중지명령이다.

이전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중대재해 발생여부, 시정조치명령 이행여부, 법령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중지명령을 발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부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올 1월 이후엔 시정조치명령을 먼저하고 사업주가 이를 따르지 않아 위험상태가 개선되지 않았을 때만 작업중지명령을 할 수 있게 됐다.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의 작업중지명령은 행정기관의 사전 시정조치명령이 없어도, 법위반사항이 아니더라도 내릴 수 있어야 함에도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선임 안해도 시정조치 못해 = 시정조치명령도 이전에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한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부개정 산안법은 그 대상과 요건을 크게 축소시켰다. 산안법 제53조 제1항은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조치, 즉 시행규칙 제63조에서 정한 7가지 사항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요건도 법령에 규정돼 있어야 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예를 들면 7가지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법령 위반사항인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미선임이나, '법령 요지 미게시'에 대해 이전에는 시정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할 수 없게 됐다. 또 법령 위반은 아니지만 세척제로 독성이 강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할 경우 이전에는 독성이 약한 물질로 대체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령돼야 하는 시정조치명령제도가 제 역할을 하는데 본질적 제약이 생긴 셈이다.

◆"적법절차 안지키는 경우 많아" =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 지방관서에서 광범위하게 행하고 있는 작업중지명령이나 시정조치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릴 때와 본부에서 작성한 작업중지명령지침 등과 같이 국민생활에 영향이 큰 지침을 제·개정할 때 행정절차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법을 모범적으로 지켜야 할 행정기관이 법위반을 밥 먹듯이 한 것이다.

고용노동행정분야 적폐청산을 위해 설립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 보고서는 2018년 9월 "고용부가 행정절차법상의 해당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작업중지명령지침 등과 같이 국민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사항에 대해서도 행정예고를 거치지 않았다"며 "행정처분 발령시 적법절차가 확보되도록 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고용부에 행정개혁위원회 권고 이후의 이행실적을 문의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앞으로 산안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관련절차를 반영할 계획"라고 답했다.

행정개혁위원회 권고가 2018년 9월이므로 2019년 전부 산안법 시행규칙 개정 시에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직무태만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고용부가 2019년 1월 제정한 '이동식사다리 안전작업지침' 홍보물. 이동식사다리를 통로용으로만 쓰고 작업용으로 사용하지 말라며,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진 2019년 2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첨부된 링크

◆사다리를 작업할때 쓰지말라니 = 행정절차법 제46조는 국민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사항 등에 대한 정책, 제도 및 계획을 수립·시행하거나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예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한 사고로 예고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나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상당한 경우 등은 예외다.

행정개혁위원회 권고 이후,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분야 중요한 지침을 지속적으로 제·개정했다. 2019년 1월 '이동식사다리 안전작업지침'을 제정했다.(사진 참조) 이동식사다리를 통로용으로만 쓰고 작업용으로 사용하지 말라며, 만약 작업용으로 쓰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다리가 산재의 원인이기 때문에 작업용으로는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것으로 비현실적인 안전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이다. 작업현장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이어졌다. 고용부는 2차례 지침을 변경한 끝에 2019년 3월 변경지침을 내놓았으나, 여전히 비현실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행정예고 한 적 없어, 작업중지명령지침은 공개도 안해 = 2017년 9월 제정해, 2019년 5월과 2020년 1월 두차례 개정한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중지명령 운영기준' 지침은 한 번도 행정예고를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지침은 제정 후 공개하지도 않았다. 사업장의 전면 작업중지는 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어떤 경우에 작업중지명령을 받을 수 있는지 기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2020년 2월 제정한 '도급시 산업재해예방 운영지침'도 행정예고를 하지 않았다. 산안법의 규정을 해설하고 보충하는 성격의 지침으로 이 지침을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지침 역시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아 3월 지침을 변경하기도 했다.

세 지침 모두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될 수 있는 규제적 성격임에도 고용부는 행정절차법상의 행정예고를 하지 않았고, 작업중지명령 운영기준은 제정 후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행정예고를 통해 의견수렴을 하지 않다 보니 법리와 현실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예측가능성도 낮아 기업 등 수범자에 의한 해당 지침의 준수로 잘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게다가 수범자가 준수해야 할 지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고용부가 해당 지침의 준수 또는 산재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부 "지침은 행정예고 대상 아냐" = 고용부 한 관계자는 "해당 지침들은 법령을 단순히 집행하거나 집행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라 행정예고 대상이 아니다"라며 "만약에 행정예고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법령의 집행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진우 교수는 "해당 지침들은 법령상의 규정을 단순하게 집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적 근거가 없는 내용, 법령상의 규정을 뛰어넘는 내용,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해석 등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다가, 기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해석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을 위한 경우라고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행정절차법에서 예외로 하고 있는 것은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는 일부 작업·사용중지명령에나 해당하는 것이고, 많은 작업·사용중지명령, 시정명령, 안전보건진단명령, 안전보건개선수립명령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전 통지를 해야 함에도 자의적으로 축소 해석해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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