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판결 이전에 합의 이끌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해야

"징벌적 배상 도입, 금융회사 분쟁해결·내부통제 달라질 것"

부실 사모펀드 사건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 '계약취소에 따른 전액 배상'을 받은 사건은 피닉스 사모특별자산투자신탁 14호 사건이 유일하다.

라임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투자원금 전액배상' 조정권고를 내린데는 '피닉스 펀드' 사건 판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당 사건은 투자자들이 2013년 1월 소송을 제기했고 2016년 4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상고 3개월 이내에 본안 심리 여부를 판단하는 심리불속행 제도를 확대하지 않았다면 3년 만에 끝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자들 역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최소 3년의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하지만 금감원 분조위 결정이 받아들여지면 1년 내에 배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판매사들이 금감원 분조위 권고 수용 결정을 연기하면서 소송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경영진은 조정 권고안을 받아들이려는 의사가 있지만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외이사들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정 보다 강력한 중재제도 = 금융상품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으면 현재 구제 수단은 분쟁조정과 소송 이외에 다른 절차가 없다. 조정은 일방이 거부하면 성립이 안되기 때문에 구속력이 없고 소송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대체적 분쟁 해결 수단의 하나로 중재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중재는 분쟁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이미 발생했거나 앞으로 발생할 분쟁을 제3자인 중재인으로 하여금 판정을 내리게 하는 제도다. 조정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중재 판정은 구속력이 있어서 양측이 모두 수용해야만 한다. 다만 중재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가 판정을 수용한다는 데 합의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는 이같은 합의가 어려울 수 있지만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분쟁 발생시 중재를 통한 해결한다'는 조항을 약관에 명시할 경우 금융회사는 중재판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중재제도는 협약에 따라 국제분쟁에 있어서도 구속력을 갖는 만큼 법원 판결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며 "금융 분쟁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중재제도 도입을 검토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현재 중재제도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각각 의료분쟁과 환경분쟁에 도입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문적인 분야라서 소송으로 갈 경우 피해자들의 입증이 쉽지 않다"며 "조정과 중재제도를 병행하면 합의를 통한 종결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분쟁 해결기구로 중재 기능을 갖춘 제3의 독립기구인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집단분쟁해결 방안과 징벌적 손해배상 = 부실 사모펀드 등 금융상품으로 인한 집단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현행 금감원 분조위의 조정제도는 '다수인이 공동으로 분쟁조정의 신청을 하는 때에는 신청인중 3인 이내의 대표자를 선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금융위원회법 시행령 조항에 따라 집단분쟁 해결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금감원 분조위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하는 조정의 한계를 갖고 있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증권분야에 도입돼 시행 중인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파생상품을 포함한 금융투자상품으로 확대하는 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증권집단소송처럼 제기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할 경우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증권집단소송은 2005년 1월 도입된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제기된 소송건수는 10건에 불과하다. 절차상의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증권집단소송의 범위를 금융투자상품으로 확대하더라도 절차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금융소비자 피해집단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절차적 요건을 완화한 형태의 집단소송 도입이 필요하고, 집단소송이 활성화되면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배상 협상에 나서는 유인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원과 주법원에 제기된 증권관련 집단소송 제기 건수는 2010년 175건에서 2019년 40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판결로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8년까지 미 연방법원에 제기된 증권관련 집단소송 중 화해로 종결된 비중은 49%, 소취하는 비중은 43%이며 최종 판결까지 간 비중은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이 제기되면 판결에 따른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적극적으로 배상 협상을 벌인 결과로 해석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시작으로 17개 법률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행위 가해자에 대한 징벌과 제재를 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주된 기능이지만, 가해자의 행위 교정과 사회 전체적으로 불법행위를 억지하는 효과가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불법행위가 확인된 경우 금융회사들이 소송으로 가기 보다는 투자자 배상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고 배임을 문제삼기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DLF·라임 사태 이후 금융회사들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과거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분쟁조정 '사모펀드 피해구제' 해법될까"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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