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청, 집단민원 일괄결정 … 미국·중국은 중재 활용, 미 집단소송도 활성화

부실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된 금융분쟁이 급증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분쟁조정과 소송 이외에 별다른 구제 수단이 없는 것과 달리 해외 주요국들은 각국에 맞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영국은 2005년부터 지급보증보험(PPI)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을 인식하고 규정 정비와 벌금부과 피해보상 등의 방안을 수립했다. 2009년 전체 금융민원의 7%였던 PPI민원은 2010년 24%에 달했다. PPI는 대출채무자가 상해사고와 질병, 실업 등으로 대출채무를 상환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이를 보험금으로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구호 외치는 라임 사태 피해자들 |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신한금융지주의 금감원 라임 분조위 결과 수용 및 라임펀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와 100% 배상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문제는 대출채무자가 굳이 PPI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체결된 경우가 발생하면서다. 또한 대출계약 과정에서 부대계약으로 PPI가 취급되면서 소비자들은 계약조건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실제 보험금 지급율이 11~15% 정도에 그치면서 대출기관들이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2013년 영국 금융옴부즈만기구(FOS)에 접수된 전체 분쟁조정의 60% 이상은 PPI 민원이고 2018년에도 40%를 넘었다. 2011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금융옴부즈만에서 처리한 PPI분쟁조정은 약 160만건에 달했다.

금융옴부즈만은 영국 금융감독청(FCA)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2000년 설립됐다. 금융민원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약 4000명의 근무하고 있으며 2000명이 넘는 조사관이 있다. 금융옴부즈만은 법학, 금융, 수학, 철학, 서비스, 정부업무 경험자 등 여러 방면의 전문성을 갖춘 경력자들을 채용해 다양한 유형의 금융민원을 해결하고 있다.


◆2억여원 이하 분쟁은 '조정결정 구속력' = 영국은 금융옴부즈만이 대부분의 금융민원을 처리하지만 집단민원은 제도개선을 통해 금융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청(FCA)이 일괄 결정해 처리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원과 같은 기능을 하는 FCA는 대규모 집단민원과 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민원 등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금감원은 금융옴부즈만과 FCA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특히 금감원 내에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모든 금융민원을 처리하고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 영국은 민원분쟁 처리만 하는 금융옴부즈만 조직이 약 4000명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금감원은 전체 인원이 20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금감원은 다수의 사건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인 반면 FCA는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또한 금융옴부즈만은 법에 의해 구성된 독립기구여서 금융당국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금융소비자에 치우친 민원 처리 기구가 아니다. 따라서 금융회사들도 금융옴부즈만의 조정안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국은 분쟁금액이 15만파운드(한화 약 2억3000여만원) 이하 사건의 경우 옴부즈만의 조정안을 따라야 하는 '편면적(일방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다. 호주 역시 분쟁금액이 32만3500호주달러(약 2억7700만원) 이하인 사건은 금융옴부즈만의 조정안이 '편면적 구속력'을 갖는다.

◆미국, 중재·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 적극 활용 = 일본은 금융감독당국인 금융청이 직접 분쟁조정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개별 금융업종의 조정기관을 통해 금융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금융청에서 허가를 받은 8개 금융분쟁조정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분쟁조정기관이 제시한 화해·조정안의 수용 여부는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조정안의 경우 금융회사가 조정안을 원칙적으로 수락하도록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분쟁에서 조정과 중재, 집단소송 등 다양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조정제도에서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분쟁의 당사자가 조정안을 수용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자율분쟁해결기구인 금융산업규제협회(FINRA)는 조정뿐만 아니라 중재기능도 갖추고 있다. FINRA가 결정한 중재판정은 민원인과 금융회사 모두에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 조정제도는 강제성이 없어서 분쟁해결에 주로 중재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중재 뿐만 아니라 미국은 금융분야에서도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강력한 피해자 구제 수단이 활성화돼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에서 승소하면 천문학적인 배상액이 금융회사에 부과된다.

미국은 피해자들이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개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집단소송이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은 소비자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범위의 소비자단체들이 대표로 나서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소송의 원고적격을소비자단체로 제한하고 있는 게 문제다. 최 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개인들이 제기하기 힘든 집단소송을 단체에서 대신해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금융분야에 제대로 된 중재제도가 없지만 중국은 조정제도와 함께 중재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각 지방별 중재위원회를 두고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중재는 조정과 달리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조정 전치주의를 두고 있다. 중재 신청에 앞서 조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중재 절차 진행 중에도 중재판정부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조정조서와 중재 판정문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고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 '사모펀드 피해구제' 해법될까"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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