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간지 슈피겔

러시아 미생물학자이자 모스크바 소재 '가말레야 국립전염병미생물학센터' 국장인 알렉산드르 긴즈부르크는 넉달 전 자신이 개발한 백신주사를 스스로에게 접종했다. 당시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도 돌입하기 전이었다. 그는 최근 독일 슈피겔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아무 문제 없이 괜찮다"며 "100명의 연구소 직원들도 백신접종에 동의해 맞았고 그들 모두 현재까지 건강하다"고 말했다.

긴즈부르크 국장이 개발한 건 '벡터백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무해한 매개 바이러스에 넣어 접종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면역시스템이 항체를 만들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다. 68세 긴즈부르크는 개발중인 물질을 자신의 몸에 주사하는 것과 관련한 위험성에 특별히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 자신과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자신했다.

코로나19 백신개발에 투자한 러시아직접투자펀드 관계자가 전 세계 첫 개발했다는 스푸트니크V 백신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그를 괴짜로 보기 쉽겠지만 이는 옛 소련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소련의 의료진이나 연구자들은 자신이나 가족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백신을 개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월 26일자에서 먹는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 비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1950년대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소련 연구자들은 자신과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먹였다(내일신문 6월 29일 10면 '소련 백신전략, 코로나에 주효할까' 참조).

NYT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 백신을 입으로 투여하는 오랜 연구 전통을 가진 러시아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열정적으로 나섰다"며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미친 과학자들'이라는 조롱을 받지만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11일(현지시간) 긴즈부르크가 개발한 백신을 국가 차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공식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딸 중에 한명도 이미 백신 접종을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의 20여개국이 러시아 백신에 관심을 표명했다.

러시아 정부의 이례적으로 신속한 조치는 코로나19 백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다. 러시아뿐만 아니다. 중국도 서두르고 있다.

슈피겔은 "전체주의적 국가들이 백신개발에서 지름길을 장려하고 있다"며 "러시아와 중국은 의료나 윤리 기준과 관련해 언제나 완벽하게 꼼꼼한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자국민을 보다 빠르게 보호할 수 있고 경쟁국보다 빨리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또 먼저 개발한 백신은 권력과 명성, 돈으로 환산된다.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백신을 사려고 앞다퉈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보다 느슨한 잣대

하지만 설익은 백신의 도입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도 전염병학자 찬드라칸트 라하리야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백신을 급히 개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백신이 안전하다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며 "러시아의 백신에서 뒤늦게 부작용이 발현하면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이 개발한 모든 백신이 불신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영국과 일본 독일 한국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현재 12개국에서 27개의 백신을 개발했다. 현재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 연구소들은 이미 임상시험 평가 과정을 시작했다. 슈피겔은 "이들 3개국은 민족주의적 성향의 정부"라며 "다른 나라보다 느슨한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전염병학자 바실리 블라소프는 섣부른 환호를 경고한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궁에서 나오는 자화자찬이 마치 소련 시대 선전선동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며 정부가 백신 개발 과정에서 규정을 느슨하게 한 것을 비판했다.

러시아는 아직 임상 3상에 돌입할 정도로 연구가 진전되지 않았음에도 오는 9월이나 10월 백신의 대량생산을 시작하려 한다. 블라소프는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규칙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WHO의 백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든 새로운 백신 물질은 실험실에서 처음 시험돼야 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동물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임상 1상에선 매우 적은 수의 시험대상이 백신을 맞고, 2상에선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백신을 맞는다. 마지막 3상에서 수만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이 이뤄진다. 단계마다 새로운 백신이 안전한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상당한 보너스

게다가 임상시험 참가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시험대상엔 보통 금전적 보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특별히 넉넉한 건 아니다. 또한 시험 결과를 담고 있는 모든 관련 데이터는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정부 기관들과 다른 과학자들이 이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가말레야연구소는 이런 가이드라인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과학적 데이터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1, 2차 임상에 참여한 피험자들은 76명에 불과했다. 그들 중 절반은 군인이었다. 다른 절반은 시민으로, 시험 참여 대가로 10만루블을 받았다. 우리돈으로 약 160만원 정도다. 러시아에서 평균 석달치 월급에 해당한다. 임상시험 자원자 중 한 명인 안나 쿠트키나는 슈피겔에 '상당한 보너스'라고 칭하며 "오랫동안 꿈꿔온 농가를 구매하는 데 보태기로 했다"고 밝혔다.

속도를 내는 건 러시아뿐만 아니다. 인도도 성급함이 엿보인다. 인도는 전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이다. 물론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백신이다. 따라서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백신의 자체 개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인도에선 최소 7곳의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중이다. 제약사 '바라트바이오텍'이 가장 앞섰다는 평가다. 이 기업은 자신의 백신 후보를 '코백신'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 6월 초 국영 '인도의학연구협의회'(ICMR) 국장이 임상시험 대상자에게 보낸 편지가 유출됐다. 편지엔 '임상시험 대상자들에게 7월 7일까지 코백신이 주어질 것이며 8월 15일까지 대중들이 사용가능한 백신을 만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8월 15일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이다.

인도과학아카데미는 즉각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같은 시간표는 달성할 수 없고 또 비합리적이는 것. 당시 바라트바이오텍도 "백신이 사용가능하려면 승인까지 최소 다섯 달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ICMR은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전 세계 임상 3상에 돌입한 6개의 백신 후보 가운데 3개가 중국 제약사에 있다. 나머지 3개 후보는 영국-스웨덴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텍', 미국 제약사 '모더나'다.

하지만 중국은 독특한 문제에 직면했다. 다른 나라들이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다. 임상을 위해 필요한 넉넉한 확진자가 없다. 백신의 효능은 시험대상이 감염의 위험이 큰 장소에 있어야 적절하게 판단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엄격한 격리·봉쇄 조치와 감시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실 거의 소멸한 상태다. 결국 중국 제약사 '시노팜'은 임상 3상 시험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시노백'은 브라질에서 진행중이다.

백신 첩보전

중국이 백신 개발에서 앞서고 있지만, 정보기관이 첩보전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미국 법무부는 두 명의 중국인 해커를 기소했다. 바이오텍 기업들의 네트워크 시스템 약점을 파악하려 했다는 혐의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안전부와 연계된 해커라는 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매사추세츠 소재 제약사 '모더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백신개발 프로젝트에 약 10억달러를 펀딩했다. 모더나는 지난달 말부터 임상 3상에 돌입했다. 미국에선 첫 번째다. 모더나는 미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보안에 유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모더나가 협력하고 있는 3개 기관 중 하나는 휴스턴 소재 베일러 의과대학이다. 미국은 현재 휴스턴 지역에서 중국인의 의료 첩보활동 여러 건을 조사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7월 말 중국 휴스턴 영사관을 폐쇄하라고 명령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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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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