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고부터 원청업체 책임방기해도 법위반 지적 안해

사고반복, 고용부 책임 커 … 경찰 역할 자처, 존재감 없어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재해조사보고서는 중요한 사항을 지적하지 않았다. 당시 사업주였던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의 명백한 법규위반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하청노동자 산재예방을 위해 원청업체로 하여금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지정해 그에게 하청노동자의 산재예방업무까지를 총괄관리하도록 하고, 하청업체의 법령준수상태를 확인해 위반시 시정조치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서울메트로가 바로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재해조사보고서는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구의역 사고 막을 수 있었다' | 지하철역 하청노동자 사망은 구의역이 처음이 아니다. 성수역, 강남역에서도 같은 사고가 있었지만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의 명백한 법위반은 지적되지 않았다. 고용부가 재해조사를 제대로 해 원청업체 잘못이 지적됐다면 같은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은 YTN이 2016년 구의역 사고현장에 한 시민이 조의를 표하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동영상


원청업체 책임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망사고 재해조사보고서도 모두 서울메트로의 명백한 법위반을 지적하지 않았다. 만약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가 제대로 이뤄져 원청업체의 잘못이 지적되고 이것이 공개됐다면 구의역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구의역사고뿐만 아니라 김용균 사망사고도 일련의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재해조사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이것이 널리 공개됐다면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의 책임에서 고용부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처벌목적 '수사' 원인규명위한 '조사' =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수사와 조사 두 가지가 필요하다. 수사는 위법여부를 가려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조사는 사고원인을 규명해 재발을 막는 데 초점이 있다. 고용부는 수사와 조사권한 둘 다 갖고 있다. 사법경찰권이 있는 지방관서 산업안전감독관이 700명 가량된다. 문제는 이들이 주로 수사를 위주로 하고, 조사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산재가 발생한 업체에서 외주를 준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 출범후 적폐청산을 위해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 보고서는 이를 정확히 지적했다. 2018년 9월 발간된 보고서는 "고용부 지방관서(산업안전감독관)는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사고수사기관일 뿐만 아니라, 재발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고조사기관이기도 하다"며 "사고수사에만 집중하고 사고조사를 등한시하는 것은 사고발생과 관련된 지방관서의 2가지 역할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서는 "인명피해가 발생한 산재에서 사고수사를 통해 사고책임자를 처벌하는데 급급하게 되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수사, 즉 일반경찰의 역할과 사실상 차별성이 없게 된다"며 "처벌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원인조사도 처벌을 위한 법위반 조항을 찾는 것에 집중되고,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재해발생원인을 종합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소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는 산안법 집행기관인 고용부가 사고발생 후 법 위반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사고발생원인의 정확하고 면밀한 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재발방지에의 활용에는 무관심한 태도에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재해조사 외부기관에 외주 줘 = 정작 중요한 종합적인 재해조사는 사실상 고용부가 재해발생사업장에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받은 기업은 고용부로부터 지정받은 안전보건진단기관에 용역을 준다.

재해원인조사에 해당하는 일을 진단기관에 외주를 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점이 문제다. 먼저 고용부가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외부기관에 미룬다는 점이다. 또 진단기관이 사업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전문성도 부족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가 이뤄지기도 어렵다.

앞의 개혁위원회 보고서는 "중대재해 발생사업장에 대해 감독기관이 공적 권위를 배경으로 중립적이고 심층적인 조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사업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외부민간기관에 의한 안전보건진단 실시명령을 기계적으로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한 대기업 안전부서에서 20년 이상 일해온 안전관계자는 "안전보건진단이 산재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것은 현장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고용부 정책부서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수도권 한 근로감독관도 "외부기관에 의한 안전보건진단은 산재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남발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개혁위는 "고용부의 안전보건진단 명령 남발은 재해조사 기능을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며 "고용부에 재해조사능력을 제고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산업재해조사 자기일로 생각 안해" = 고용부에 '재해조사능력 제고 방안 마련'이란 개혁위 권고의 이행여부에 대해 물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최근 "재해조사를 정확히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면서도 "인력부족 등 저희가 가진 한계가 있어 (산업안전)공단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재해조사를 공단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고용부가 애당초 재해조사를 안전보건공단과 안전보건진단기관의 일로 생각하고 재해조사능력을 강화할 생각 자체가 없다 보니 재해조사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의지조차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용부는 사고조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사고수사만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사고조사는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사고조사에서 보다 전문적이어야 할 고용부가 사고발생 후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찰에도 한없이 밀리고 결과적으로 고용부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보고서 공개안돼 활용 못해 = 고용부의 재해조사보고서 비공개도 문제다. 개혁위는 앞의 보고서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한 후 일정한 시점에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해, 재해조사결과가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재해조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것"을 권고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안전보건공단에서 일부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결과 공단에 공개된 보고서는 고작 10건에 불과했다. 사망사고로 한정하더라도 매년 800건을 상회하는 산재사고 중 10여건의 보고서는 1% 안팎에 지나지 않아 매우 미흡하다. 무엇보다 고용부가 재해조사결과보고서를 공개한 실적은 없다는 점에서 문제다. 공단은 재해조사업무에 대한 보조기관에 불과해 책임이 있는 고용부가 이를 공개해야 마땅하다. 역시 재해조사를 자신의 업무로 생각하지 않는 고용부의 인식을 반영한 셈이다.

재해조사보고서가 공개되지 않다보니 다른 기업에서 예방자료로 활용할 수도 없고, 연구자들이 분석할 수도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정 교수는 "고용부는 산재예방에서 최고의 학습자료인 재해조사결과를 스스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활용하도록 하지 않고 있는 점에서 잘못과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고용부는 감독관 숫자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행정기관 직원의 수를 외국과 비교할 때는 안전보건공단까지 포함하여 보아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산재예방 행정인력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후진적인 행정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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