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보다 가업 중시하는 가족경영 … 중소기업 지역사회 발전의 책임자

코로나19로 한국경제의 아픈 손가락인 중소기업과 청년일자리가 다시 한번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감기 앓듯 지나가지만 기저질환자나 노약자에게선 목숨을 앗아간다. 어떻게 한국 중소기업과 청년일자리에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내일신문은 정미경 한독경상학회 아우스빌둥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중소기업이 인력양성제도인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이끌며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사례를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제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 독일은 39개의 군소국가로 나눠져 있었다. 통일된 뒤에도 독일제국은 4개 왕이 다스리는 나라, 6개 대공의 나라, 5개 공작의 나라, 7개 후작의 나라, 3개의 자유시, 그리고 엘자스-로렌 제국령으로 나눠진 연방국가였다.

이렇게 소국으로 나눠진 독일의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 괴테(1749~1832년)는 "독일의 위대한 점은 놀랄 만한 국민문화가 나라의 모든 지역에 골고루 퍼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괴테는 이러한 국민문화를 발산하고 담당하고 육성해온 것은 바로 '군주들의 수도'라고 했다. 괴테의 시대 독일엔 20여 개의 대학과 100개 이상의 공공도서관이 나라 전체에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인문계중고등학교 기술공업학교 등 국민교양과 교육시설의 숫자도 상당했다. 학교는 오히려 남아도는 형편이었다. 군주들이 자기나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건설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괴테는 독일이 통일돼도 큰 나라의 수도는 단 하나이고, 큰 수도 하나에서 인재도 양성하고 국민생활의의 번영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현대 독일의 연방주의는 과거 군주국가들이 각자의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듯 각 지방에서 공간적 지배권을 갖는다. 연방주는 각자 헌법을 재정할 권한이 있고 독자적으로 주의 세금을 징수하고 영역 안에서 주를 다스리는 통치기구를 갖는다. 수평적 분권에 의해 각자 지분을 갖는 연방을 구성한다.

◆보쉬, 2만명 시골도시에 본사 둬 = 독일 기업은 이런 지방도시의 자율성과 경쟁력에 기반한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수도 베를린이 아닌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다. 자동차산업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이고 옛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에 본사가 있다.

지멘스(엔지니어링) BMW(자동차) MAN SE(트럭) 린데(가스) 알리안츠(보험) 뮤닉 리(재보험) 그리고 로데 & 슈바어츠(전기)는 옛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그리고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에 본사를 둔다. 화장품 업계의 대표주자인 니베아는 융성한 중세 자유시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 본사가 있다. 많은 기업이 시골도시나 시골마을에 본사를 두기도 한다. 세계적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은 인구 12만명의 볼프스부르크에, 의약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바이엘은 인구가 15만명에 불과한 레버쿠젠에 본사를 두고 있다. 보쉬는 인구 약 2만명의 게를링겐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특유의 중소기업 전략 = 지방에 뿌리내리고 있는 독일 중소기업은 미국의 기업들과 달리 익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경쟁하기보다 세대를 이어 내려온 단골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단기 손익에 연연하기보다 가족이 기업을 소유하고 장기 생존전략을 펼친다. 2015년 세계시장을 리드하는 독일 최고의 중소기업들을 연구한 논문, 프로리안 랑엔샤이드와 베른드 베노어의 '독일 최고의 중소기업들;세계시장의 리더들'에 따르면 독일의 중소기업은 경영모델의 특징을 △세계적 틈새시장 지배전략 △'계몽된' 가족자본주의 전략 △핵심공정 세계최고 지향 그리고 독일 특유의 지역적 비즈니스 환경의 이점 활용하는 전략이다.(그림1) 가족이 중심이 돼 이끄는 중소기업과 지역경제는 서로 긴밀한 협조 속에 발전한다. 지역의 번영은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가족기업의 경제적 성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남의 돈을 잘 쓰지 않는 중소기업= 지역경제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하우스방크제도다. 독일어 하우스(Haus)는 집을 뜻하고 방크(Bank)는 은행을 말한다. 향토성이 진한 지역의 저축은행이다. 독일의 은행은 상업은행, 주립은행, 저축은행, 그리고 신용협동조합이 있다.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는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 가족이 소유한 독일의 중소기업은 수세대에 걸쳐 쌓아온 자기 자본이 있어 남의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기업을 공개하고 주주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남의 돈이 필요한 경우 긴밀하고 장기적인 거래로 다져진 지역의 저축은행을 찾아 돈을 빌린다.

◆지역기업을 꿰뚫고 있는 저축은행 = 저축은행은 시·군 단위의 지방정부가 지역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주의 저축은행법에 따라 설립한다. '지역주의 원칙'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만 영업을 하고 한 지역에 하나의 저축은행만 있어 동종업종 내에 경쟁하지 않고 다른 업종과 기업결합을 할 수 없다.

지역사회를 위해 설립된 저축은행은 지방정부가 이사의 2/3를 임명하고 나머지 이사는 직원들 중에서 임명된다. 이들은 공익성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부실대출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관계금융에 집중하게 된다. 즉 차입자와의 장기간 반복적으로 거래를 하면서 밀접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금융거래에 불확실성을 완화한다.

◆ 5년 이상 장기대출 비중 73.5% = 은행은 거래의 불확실성이 낮으면 기업에 장기저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 2013년 말 독일 저축은행이 기업에 만기 5년 이상 장기대출을 한 비중은 73.5%에 달한다. 대규모 상업은행(51.4%), 주립은행(68.8%), 신협중앙회(53.2%)에 비해 장기대출의 규모가 크다. 저축은행은 독일의 중소기업이 다른 나라의 중소기업보다 자금 동원력을 갖도록 도와준다.

2013년 독일의 중소기업 중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은 전체의 8%(유럽연합 28국 평균 15%)에 불과하다. 기업 내부의 자본이 풍부해서 대출신청이 필요가 없었던 기업이 전체의 58%(유럽연합 평균 50%)였다. 2013년 중소기업대출신청에 대한 기각률은 2.5%로 EU평균(14.4%)과 비교해 낮다.

◆지역 일자리 지키면 상속특례 = 2014년 독일 전체 기업의 93.6%가 가족기업이다. 대기업도 가족기업이 적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가족기업이다. 독일은 가족기업이 경제의 안정적 발전, 좋은 일자리, 세계시장 개척에 기여함을 알고 가족기업이 지속되길 원해 그들의 애로를 해소한다. 가족기업을 상속할 때 상속자는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상속자는 세금을 납부하려고 물려받는 기업의 현금성 재산을 인출하거나, 기업재산의 일부분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출과 매각이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곤 한다.

정부는 상속 또는 증여 받은 기업이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경우에 정책적으로 세금을 감면한다. 기업이 상속 당시의 고용수준, 임금수준, 자산을 5~10년간 유지하는 경우 상속된 기업재산의 대다수를 비과세하는 과세특례를 적용한다.

◆기업의 지역사회 기여, 도덕·윤리의 문제 = 가업승계는 조기에 장기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기업의 전략적 과제이다. 15~18세기 오랜 전통을 가진 가족기업들은 가업을 이어받을 후계자 양성을 위해 아들이 13살 정도가 되면 당시 산업의 중심지 멀리 베니스로 보내 도제훈련을 받도록 했다. 독일의 가족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혈연보다 가업이다. 창업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경영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며 큰 아들이 기업을 계승하는 것도 아니다.

가업의 지속을 위해 가족 중 경쟁력 있는 후계자가 없을 경우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소유와 경영을 과감히 분리한다. 혈연적인 경영권의 상속보다 가족이 대를 이어 기업에 심어놓은 뜻이 잘 계승될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고용한다.이런 가족기업의 경우 전문경영인의 수명도 길다. 평균 20년 이상 가족기업을 맡아 경영을 한다. 최고경영자의 임기가 짧으면 단기실적에 급급해 장기적인 회사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중소기업은 지역사회의 책임자 = 이러한 가족기업은 지역의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라 정치와 더불어 지역의 발전을 책임지는 파트너다. 대기업은 기업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이행한다.

그러나 독일의 중소기업은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기여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바라본다.(그림3) 또 기업이 나서 지역 환경과 인간 삶의 조화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족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가족과 지역을 기반으로 장기적 안목으로 경쟁력을 창출하고 지역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면서 발전한다.

정미경 박사는

현재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며 단국대 초빙교수로 있다.

한독경상학회 아우스빌둥위원회 위원장이다.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동 대학에서 강의했다.

독일의 직업훈련제도, 한국과 독일 인적자본투자의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독일식 비결을 찾는다"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