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박근혜 탄핵도중 지방관서에 보내

산재예방 핵심 ‘위험성평가’ 사실상 무력화시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황교안 권한대행 시절인 2017년 1월 4일. 고용노동부가 ‘안전업무 소홀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말라’는 황당한 지침을 지방관서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안전보건관계자 업무 미수행에 따른 과태료 부과시 유의사항 알림’이란 제목의 비공개 지침이 그것이다.

고용부는 통상 사업장 안전보건관계자가 법정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해 왔는데, 지침은 위험성평가의 미수행만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지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안전보건관계자를 지정해 각종 안전업무 수행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했다. 특히 위험요인을 기업 스스로 찾아 제거하는 ‘위험성평가’ 는 사업주 핵심 의무 중 하나이지만 형식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율안전관리의 핵심수단인 위험성평가를 내실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를 수행하지 않아도 처벌하지 말라는 지침을 시달하는 바람에 대기업에서는 위험성평가가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중소기업에서는 위험성평가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게 됐다.

2018년 9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중앙대 이병훈 교수)는 “국제적으로 위험성평가가 메가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성평가 미실시에 대해 사실상 처벌할 수 없다는 고용부 지침에 따라 지방관서에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평가의 실시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라며 “그 결과 지방관서와 안전보건공단에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평가 실시를 적극적으로 독려·지도하지 못하고 있고 위험성평가를 활성화시키는 데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지침 이후 발생한 중대사고의 한 원인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위험성평가만 제대로 했으면 많은 중대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는 여전히 이 지침을 폐지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아직 위험성평가를 강제화한 것은 아니지만,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주무과장으로 위험성평가제도 도입을 주도했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입법부가 정해놓은 위법행위에 대해 행정부가 처벌불가 지침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가 위법적이고 위험성평가를 무력화시키는 처사”라며 “이런 무책임한 행정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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