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보다 산안법 뜯어고쳐야

영국서 배울 점은 처벌만 아니라 전문적 행정조직

지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중대재해기업 및 책임자 처벌법'을 발의했다. 중대재해는 개인의 실수가 아닌 기업범죄이고, 강한 처벌로 기업의 안전관리를 유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해를 예방하자는 취지는 공감해도 '과잉입법 우려' '형법상 책임주의원칙 위반 우려' '신중한 검토필요' 등의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법 제안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법인과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산재로 노동자가 사망해도 기업주, 특히 대기업 대표이사가 처벌받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현장 책임자나 중간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 산안법으로는 대기업의 경우 대표이사를 사실상 형사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2002년 고용노동부와 여당이 산안법을 개정해 사업주 처벌조항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내일신문 7월13일자 20면 참조) 산안법을 다시 개정해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제' 위반을 형사처벌로 바꾸면 대표이사 책임을 얼마든지 제대로 물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과잉입법이나 책임주의 원칙 위반 논란도 벗어날 수 있다.

노동·시민단체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가 커질수록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산안법과 고용노동부의 문제점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안법과 전문 행정조직이야말로 산재예방을 위한 핵심수단이다.

문제가 있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도록 고쳐서 써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델인 법인과실치사법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에서 배울 것은 처벌만이 아니라 충실한 법규와 전문적인 행정조직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산재사망률을 보이는 것은 강한 처벌보다 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법규와 전문적인 산재예방행정조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영국의 산안법과 산재예방행정조직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대학생과 초등학생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차가 크다"며 "영국에서 강한 처벌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것도 수준 높은 산안법과 전문적인 산재예방행정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재예방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현장의 각종 화학물질과 복잡한 기계류, 생산공정 등에 필요한 안전조치가 확실히 이행되도록 하지 않으면 산재를 막을 수 없다. 안전조치를 갖출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현장에 필요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지도하고 강제하려면 선진적인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행정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 교수는 "정부가 산재예방을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산재사망자가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법과 행정조직이 엉성하기 때문"이라며 "엉성한 행정조직을 바로 세우고 땅에 떨어진 법 규범력을 대폭 뜯어고치지 않으면 고비용 저효과 행정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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