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청 토대 제공

산업재해 예방 선진국으로는 단연 영국이 꼽힌다. 영국 산업안전의 틀을 만든 것은 로벤스보고서다. 대형 산재사고와 직업병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던 1970년 영국 정부는 로벤스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왕립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로벤스경은 산업안전보건분야 전문가 7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2년간 조사활동후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유명한 로벤스보고서다.

보고서는 크게 3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법령이 너무 많은 점 △많은 법률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복잡한 점 △행정관할이 세분화된 점 등이 그것이다. 약 5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적이다.

당시 영국에는 9개 법령군(群)과 그것에 딸린 약 500개 되는 상세한 규칙이 있고, 이것들은 매년 증가했다. 방대한 법률은 안전보건을 단지 외부기관으로부터 부과된 상세한 규칙에 대응하는 법률문제로만 보이게끔 만들었다. 중요한 지적도 했다. 종래의 제도는 국가규제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고, 개인의 책임이나 자율성 및 자발적 노력은 경시되고 있는데 이 불균형은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시책의 중심은 일상적인 사건의 상세한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자신에 의한 자율적인 안전보건조직 구축과 운영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많은 법률의 구성이 조악하고 너무 상세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들 법률이 적용대상 사업장의 관리감독자 등 법률전문가가 아닌 자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표현과 스타일로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각종 안전보건규정이 기술의 발전을 반영할 수 없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었다. 영국의회는 1974년 보고서의 권고대로 사업장의 자율적 안전관리활동이 가능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했다. 이 법을 집행하기 위한 정부기구로 정책결정기관인 안전보건위원회와 집행기구로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했다. 영국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청은 산재예방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후 많은 국가들은 영국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청을 모델로 삼았다.

로벤스보고서에는 못미치지만 우리나라에도 산업안전분야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가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후 고용노동분야 적폐청산을 목표로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보고서'가 그것이다. 9개월여의 짧은 기간 활동을 했지만, 이중 산업안전분야(집필 :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를 보면 문제점과 대안이 잘 제시돼 있다.

영국과 가장 다른 점은 이 보고서가 장관이 바뀌자 그대로 사장됐다는 점이다. 영국이 로벤스보고서를 반영해 산업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보고서를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무시했고, 그 결과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산재예방행정이 전문성뿐만 아니라 진정성도 없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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