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경영체제’ 지침제정 의무조항 삭제

형식적 인증만 남아 … 산업안전 ‘역주행’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법적 기준 준수와 자율안전관리가 그것이다. 최저기준 확보에 중점을 둔 산업안전보건법의 준수만으로는 산재 발생에 유효하게 대처할 수 없다. 사업주가 사업장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한 자율적 안전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진국은 산업안전에서 법적 기준과 더불어 사업장 자율안전관리를 강조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자율안전관리의 개념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없이 법적 기준의 준수만 강조한다.

자율안전관리 강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고용노동부가 그 핵심수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산안법 전부개정안 후속조치 일환으로 정부는 2019년 12월 시행령을 개정했다. 문제는 시행령 개정과정에서 ‘안전보건경영체제’ 확립을 위한 지침을 고용부장관이 고시하도록 의무화했던 조항(시행령 제3조의2 제3항)을 삭제한 점이다.

안전보건경영체제(OSHMS)란 자율안전관리의 핵심수단이다. 안전보건을 경영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파악하고 생산과 일체로 생각하는 시스템적 접근이 안전보건경영체제이다. 안전보건을 안전보건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계층과 부서에서 관여·참여해야 하는 일로 보는 것이다. 사업주 스스로 사업장의 위험요소를 평가해 제거하는 ‘위험성평가’도 안전보건경영체제의 중요 수단이다.

이런 중요한 지침(고시) 제정 의무가 고용부장관에게 있었으나 그동안 이를 이행하지 않다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8년 9월 행정개혁위원회는 “2013년 8월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사업장 안전보건경영체제에 대한 지침 제정 근거가 명시적으로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제정이 안되고 방치되고 있다”며 장관의 의무이행을 촉구했다.

고용부장관은 의무이행은커녕 아예 의무조항을 삭제하는 무책임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해당 조항을 삭제한 게 아니라 정비한 것”이라며 “안전보건경영체제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보아 산업안전공단을 통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고용부는 안전보건경영체제의 의미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다 보니 아무런 시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고 고시 제정근거도 삭제한 것”이라며 “심각한 문제는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방향 제시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지 공단에 맡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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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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