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형 협력안보는 평화를 위한 협력적 위협감소 과정 속에 비핵화를 위치시킨다

홍 민 실장, 통일연구원

한반도의 불안정성과 위기, 평화와 안보를 북한의 '핵문제'로 환원하여 하나의 상식으로 보는 방식은 어느 누구도 북한의 '핵무기' 또는 '비핵화'를 경유하지 않고는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기 힘들도록 하는 강력한 프레임(frame)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 프레임에 평화의 상상력이 갇혀 있다. '평화프로세스' 역시 비핵화 방법론 수준에 머물고 있다. '평화'를 비핵화의 결과 또는 상응조치, 비핵화 이후 올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프레임 효과다.

'비핵화' 프레임은 북한의 폐쇄성, 호전성, 도발이라는 '비정상성'의 서사, 대북제재와 군사적 대응이라는 '안보'의 서사를 재생산한다. 프레임은 어떤 상황을 정의하고 위협적 미래를 지시하며 이에 대한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군사훈련을 하고 무기도입을 하고 결의문이 채택되고 법과 제도를 만들고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알린다. 잘 구축된 프레임은 실재(reality)를 정의하는 것 이상으로 실재를 창조한다.

한반도 평화문제의 근원은 '적대 관계'다.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적대관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핵무기는 적대관계의 결과 적대관계의 실존적 부산물일 뿐이다. 핵무기를 제거한다고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관계'에 있다. 서로를 적대하는 형식과 내용을 바꾸는 것이 한반도 평화문제의 본질이다. 우호적이거나 평화적으로 공존 가능한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위협 인식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반도형 협력안보'는 비핵화를 위한 평화가 아닌 평화를 위한 협력적 위협감소, 상호안전보장의 과정 속에 비핵화를 위치시킨다.

북한 비핵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게 핵심

북한은 안전보장을 군사적 차원 이상의 '체제' 차원의 안전보장으로 보고 있다. 평화프로세스가 북한의 안전보장과 포괄적으로 조응해야 하는 이유다. 안전보장이 군사, 외교, 경제 등 다양하고 촘촘하게 '그물망' 형태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북한에게 비핵화의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상호안전보장'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진전시킬 수 없는 구조로는 어떤 평화도 불가능하다. '비핵화 프레임'은 미국의 정치 역학, 군산복합체 이해관계, 대중국 경계와 동북아 전략구상, '체질적인' 대북한 불신, 북한의 대미국 불신과 위협 인식, 미중 전략경쟁, 분단구조 등과 결합돼 있다.

여기에 남북관계는 북미협상에 따라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흔들려 왔다. 한국은 북핵 및 안보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임에도 온전히 '당사자'로서의 위상을 갖기 어려웠다.

협력안보는 적대하는 상대와 다양한 협력을 통해 안보를 증진시키는 접근이다. 핵심은 '상호안전보장'이다.

'한반도형 협력안보'는 상호안전보장의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며, 협력적으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의 단계적 군비통제(군축)와 비군사분야에서의 협력 아이템을 상호 촉진적으로 연계하는 구상이다. 한반도의 포괄적 안전, 남북한 공존을 위한 안전, 민족공동체의 안전을 중심에 놓는 접근이다.

전통적 안보영역 이외에도 비전통적 안보영역을 포괄한다. 핵심은 상호안전을 보장해 가며 가능한 것부터 위협을 감소시키는 종합적인 '협력적 전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종합적 그림

첫째, 상호주의와 동시성이다. 기존 접근은 북한의 비핵화, 위협의 주체는 북한이다. '안전보장'과 '위협감소'의 상호성이 없다.

'한반도형 협력안보'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도 중요하지만 북한에 대한 위협 역시 중요하게 인식한다. 소위 서로 느끼는 위협에 대한 인정과 안전보장 조치의 교환이 상호적이고 동시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안전보장의 확장성과 포괄성이다. '한반도형 협력안보'는 군사 이외에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심리적 차원의 협력과 안전보장 '효과'를 중요시한다.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안전보장의 실질적 효과는 갖는다고 본다.

이런 확장은 북한이 제기하는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의 포괄성과도 연동된다. 남북미가 '상호안전보장'의 영역을 합의함으로써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의 모호성을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셋째, 협력안보의 주체, 위협감소의 주체 설정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한국형 평화프로세스의 종합적 그림을 제시한 바가 없다. '한반도형'은 한국의 당사자성과 주도성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한반도형 협력안보의 '주체'는 '중심적인 협력층위', '국지적 협력층위', '보장적 협력층위' 등 역할에 따라 다층적 스케일에 위치한다,

'중심적 협력층위'는 남북미로 구성된다. 포괄적인 상호안전보장 및 협력적 전환에 큰 틀 합의를 하고 상호위협감소에 단계 합의하는 핵심적인 협력국가들이다.

비핵화와 한반도의 위협감소 문제는 북미, 남북, 한미의 양자적 현안이 직접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북미의 문제로만 온전히 협상되고 결정될 수 없다. '국지적 협력층위'는 큰 틀의 남북미 합의에 따라 양자적 세부 실천사항을 합의하는 협력 스케일을 의미한다. 가령 '남북' 사이의 세부적 협력사항(적대적 군사행동 및 군비증강 계획의 비적대적 조정, 기존 합의 이행, 남북한 기본협정 체결), '북미'의 세부적 협력사항(관계정상화, 다방면의 인적·경제적 교류), '한미'의 세부적 실천 협의(한미연합훈련 조정, 전략자산 전개 제한, 전시작전권 전환 계획) 등이 각각 조율되는 방식이다.

남북, 북미, 한미의 세부적 합의 내용은 각각의 내부 비준, 협정 형식을 통해 구속력을 확보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다.

'보장적 협력층위'는 남북미의 합의를 4자(남북미중) 또는 6자(남북미중러일),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협력이다. 남북미 합의,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 대북제재 해제, 비핵화 기술적 지원, 북한 경제발전 지원 등에 대한 보장이다. 이런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는 평화선언, 유엔의 지지결의안도 가능하다. 실질적 위협감소 주체와 정치적 보장 주체들이 다중스케일 차원에서 '느슨한 레짐'을 형성하는 것을 '한반도형' 협력안보의 모델로 삼는 것이다,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이 중요

마지막으로 '한반도형 협력안보'는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이 중요하다. 안보 교환은 유사한 무기를 똑같이 줄이거나 제거하는 기계적 '등가성'보다는 상응하는 '안보재'를 제공하는 유연한 등가성이 가능하다. 비핵화에 상응하는 불가침 및 평화협정, 실질적인 대북 군사위협 감소, 새로운 외교적 관계 수립, 북한의 전략무기 폐기 및 감축에 대한 비용 제공, 군수의 민수 전환 관련 비용 제공, 정상적 대외경제 활동 여건 조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홍민 박사는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평화발전분과 상임위원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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