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단계 CTR을 통해 상호신뢰를 증진시킨다면 핵 폐기 같은 CTR프로그램을 구동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부형욱 책임연구위원, 한국국방연구원

협력적 상호위협감소(CTR: Cooperative Threat Reduction)는 협력안보의 현실적 적용이다. 협력안보가 무엇인가.

자신의 안보만 절대적으로 추구하다보면 역설적으로 안보상황이 악화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데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협력안보다. CTR은 협력안보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소련 붕괴에 따른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소련위협감소법'이 통과되면서 CTR이 본격화 되었다. 미국의 CTR 예산은 러시아, 리비아, 이라크에도 투입되었지만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의 비핵화에 투입된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이 추진한 CTR의 성과는 눈부시다. 8000기에 가까운 핵탄두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핵 투발수단과 핵 원료, 화학 및 생물학 무기가 폐기되었다.

예산은 얼마나 투입되었을까. 미국이 1992년부터 25년 간 투입한 예산을 원화로 환산하면 약 17조원 규모다. 엄청난 규모라고 볼 수도 있지만 폐기된 WMD의 양을 고려하면 큰 돈이 아니다. 1년에 7000억원 정도니 말이다.

기존 CTR, 북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어

한반도에서 협력안보를 모색하고 CTR을 구동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기존 방식의 CTR을 북한에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무엇보다 구소련 3국은 '물려받은' 핵을 폐기하는 것이었고, 리비아와 이라크는 핵을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이 북한과 다르다.

협력적 위협감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서 Kh-22 미사일이 해체되고 있다. 사진 출처: 미 국방위협감소국(DTRA)


CTR을 적용받은 국가들이 자신의 안보가 취약해졌다고 보는 것도 문제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빼앗겼고, 리비아의 카다피는 길거리에서 죽었다. 핵 포기가 개혁·개방으로 이어져 경제라도 발전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물론 CTR이 경제지원 패키지가 아니었고, WMD를 폐기하는 실비 지원의 성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측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 내에서는 북한이 비핵화하기만 하면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지원만 바라보고 안보 문제를 도외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협력안보를 구동시키고 CTR을 논의하려면 기존 CTR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서로의 안보우려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소요되면 그것을 우리가 댈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형 CTR의 초기단계 모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초기 단계 CTR을 구동시키려면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핵 동결'과 미국의 핵 위주의 억제전략 완화를 교환하는 조치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 억제를 강조했기 때문에 북한이 핵에 더욱 집착한다는 미국 내 소장학자들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양측이 이러한 교환에 합의하면서 신뢰를 쌓아 가면 한반도형 CTR의 엔진이 돌아갈 수 있다.

남북 간에도 협력해야 할 사안이 있다. 현재 남북 간 군비경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공세적 군사태세로 인한 우발전쟁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가면 피차 위험하다는 군사적 '각성'이 필요하다. 군사공동위와 같은 채널을 통해 군사적 압력을 낮추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군사적 압력을 낮추는 과정에서 비용이 문제가 되면 우리가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DMZ, 오픈 스카이·CCTV로 군사긴장 저감 필요

남북 간 군사대화 채널이 활성화되면 9.19 군사합의를 넘어서는 군사적 투명성 확보 조치를 추진할 수 있다. 군사정보 교환과 검증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하여 CTR 프로그램 하나를 고안할 수 있다.

군사정보는 그 정확성 확인을 위해 정찰기를 활용한 검증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반도형 오픈 스카이(Open Sky)'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고, 관련 비용을 우리가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의 정찰자산이 낙후되어 있으므로 우리 자산 혹은 제3국 자산을 활용하고 그 비용을 우리가 대고, 확보된 정보는 공유하면 된다.

다음으로 9.19 군사합의에서 설정한 완충구역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검증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도 초기단계 CTR로 고려할 수 있다.

GP 완전철수에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가고, 비무장지대 내 주요 기동로에 남북이 공동으로 조기경보체계(CCTV 등)를 설치하여 영상을 공유하는 데 비용이 소요된다. 우리가 이 비용을 댈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미국이 추진했던 WMD를 해체하는 CTR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단계 CTR을 통해 상호신뢰를 증진시킨다면 핵 폐기와 같은 본격적인 CTR 프로그램을 구동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북핵 안정성 확보 위한 국제적 CTR도 추진해야

핵 폐기라는 본래의 CTR로 들어가기 전에 북핵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국제적 CTR도 필요하다.

북한은 핵탄두와 운반체계 확보에 자원을 집중한 나머지 핵 지휘통제체계 안정화에는 중점을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핵은 매우 불안정하게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 안정적인 핵 지휘통제체제가 없다면 의도치 않은 핵전쟁의 위험이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북핵 동결과 최소한의 핵탄두 보유를 전제로 국제적인 공조 하에 핵 지휘통제 시스템 현대화를 촉구하고, 그러한 체계 구축에 일부 재정지원을 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정치적 논란이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핵폐기를 위한 CTR에 돌입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이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협력안보와 CTR은 하나의 과정이다.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와 기습방지, 그리고 북핵 안정성 확보를 포괄하는 1단계 CTR로 신뢰가 구축되면 2단계 CTR, 즉 본격적인 핵 폐기를 위한 CTR로 접어들 수 있다.

2단계 CTR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서는 나름의 동력이 필요하다.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논의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CTR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면 항구적인 평화가 구축되는 날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올 것이다.


◆부형욱 박사는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청와대 안보실 선임행정관, 국방대와 세종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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