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동결이나 감축, 연합훈련중단, 유엔사역할 재조정 등 선제적 위협감소 조치들은 대북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문장렬 박사, 전 국방대 교수

협력적 '상호'위협감소(CMTR: Cooperative Mutual Threat Reduction)는 '협력적 위협감소(CTR)'의 한반도 적용 모델이다. CTR에서는 어느 한 쪽의 위협을 다른 쪽의 비용으로 제거하는 행위를 '협력'으로 보았다.

한반도에서는 그런 방식의 협력이 불가능하다. 안보상황, 위협의 성격, 강대국 정치 등 전반에서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여 위협을 제거한다는 CTR의 기본 성격은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더 포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특수 상황을 반영한 상호위협감소

고려해야 할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협의 성격이 상호적이고 비대칭적이며 다중적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위협으로 여기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대북 제재는 군사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문제와 얽혀있다. 제거해야 할 위협들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의 안보 이익도 중첩되어 있다.

둘째, 강대국 의존성이 남북한 당사자성을 압도하고 있다. 북미 비핵화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아직 세계전략과 동북아 지역전략에 부응하는 중장기 대중국 관계와 북미관계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이라는 '뒷배'를 가지고 미국과만 협상하려 하며 한국은 지금까지 비핵화와 제재 문제에서 미국에게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다.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제1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대주의'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남북한 당사자성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확대해 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셋째, 위협감소를 위한 보상과 협력의 분야가 다양하고 그에 따라 비용 분담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가 합의된다 하더라도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시설, 장비, 물질 등을 실제로 제거하는 비용은 북한이 아닌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민수로 전환할 경우도 비용을 요한다.

남북한 간에 재래식 군비통제가 이행되더라도 유사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북한은 단순한 제재 해제 이상의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

협력적 상호위협감소의 이행은 편의상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수 있다. 프로세스는 위협과 협력의 내용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눈 것으로서 비핵화, 평화체제, 재래식 군비통제, DMZ 평화지대화 등을 포함한다. 각 프로세스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되며 2개 이상의 국가들이 당사국으로 참여한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행 비용이 가장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루어지더라도 비용 분담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할 수 있다.

한국은 비용 분담 문제에서 비핵화 이행과정에 참여한 정도와 수혜의 크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현금만 지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수 전환이나 발전소 건설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남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 프로세스: 정전체제에서 상존하는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위험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프로세스이다. 이를 구성하는 프로그램들은 종전 및 평화 선언, 평화협정의 체결, 북미수교, 북일수교, 남북기본협정의 체결 등이다. 주요 당사국은 남북한과 미국이며 중국과 일본이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세스에서는 북일수교 과정에서 배상 또는 보상 문제가 논의될 것이지만 다른 비용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 재래식 군비통제 프로세스: 남북한의 재래식 군사력도 그 양과 질, 배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시급히 감소시켜야 할 상호적 위협이다. 세부적인 프로그램은 먼저 9·19 군사분야합의서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합의사항의 이행을 점검하면서 운용적 군비통제의 확대 방안, 적정 수준의 군축과 구조적 군비통제 문제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 발생하는 비용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각자 부담하되 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이 장기적 전략적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과감한 지원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DMZ 평화지대화 프로세스: DMZ 평화지대화는 남북한 재래식 군비통제의 한 부분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DMZ는 육로를 통한 남북한 간의 모든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대 내에 설치된 군사 시설의 완전한 철거는 물론이고 이후 '사실상의 DMZ' 확장을 남북한 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의 부담은 재래식 군비통제 프로세스의 협력 방식을 준용할 수 있다. 또한 유엔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관리권과 관할권을 한국군이 행사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

▶한반도 평화경제 프로세스: 감소 또는 제거의 대상이 되는 특정한 위협은 상정하지 않더라도 상호위협감소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분야가 남북 경제협력이다. 대북제재 상황에서도 가능한 인도주의 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일부 제재 위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경협을 추진하는 방안까지 준비해야 한다.

상호위협감소를 유인하는 선제적 조치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현재의 상황에서 한반도형 협력적 상호위협감소의 실현은 기대하기 어렵다.

상당 기간 동안 핵무장한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 일환으로 위협감소에 있어서 상호라는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가능한 선제적인 접근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남한이 북한에게 상응 조치를 요구하기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위협감소 조치를 취한다면 그 자체로 평화공존에 기여할 수 있고 위협감소의 상호성과 협력적 성격을 살려내는 대북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남한이 취하는 선제적 위협감소 조치들은 대북 억제력을 훼손하거나 안보의 불안을 심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이 느끼는 위협을 실질적으로 감소해 주는 과감한 조치라야 효과가 있다.

연합훈련의 중단, 첨단무기 도입의 순연, 국방비의 동결 또는 감축, 병력과 부대의 추가적 감축,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대북 군사전략 목표의 재설정, 주한미군과 유엔사 역할의 재조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문장렬 박사는 현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방대 교수, NSC사무처 전략기획담당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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