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돼도 인민군을 경제개발의 조직적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

황일도 교수, 국립외교원

남북이 협력안보의 틀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질문 중 하나는 평양의 수용성 문제다. 특히 군사분야의 한계, 즉 북한의 현재 군사전략·전력구조·중심교리가 협력안보의 틀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가장 어려운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협력안보라는 틀을 통해 북한이 얻게 될 정치적·경제적 이익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 해도 북측이 갖고 있는 군사적 인식틀과 고정관념, 기존 체제의 관성은 이를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전략이란 본질적으로 정교한 계산의 산물이다. 상대와 나의 전력 크기, 처해진 지정학적 조건의 특성에 따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와 방식을 설정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냉전기 유럽의 군비통제체제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재래식 전력의 합리적 충분성(reasonable sufficiency) 개념을 주창하며 이러한 보편성을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주요 건설프로젝트 인민군 주도하에 진행

억제이론은 군사적 억제를 크게 거부억제와 응징억제로 나누어 구분한다. 상대의 공격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상대가 군사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게 거부억제라면, 상대가 공격할 경우 훨씬 강한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응징억제의 기본 논리다. 개념적으로는 확전 우세를 추구하는 공격형 전력구성 대신 확전 통제를 추구하는 방어형 전력구성이, 혹은 조기 확전을 전제한 응징억제 교리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주력하는 거부억제 교리가 군비통제 모델과 친화성이 높다고 풀이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의 경우 이러한 합목적성보다는 체제의 위신이나 '일천배 피의 복수' 같은 정서적 요인을 기반으로 응징억제에 강하게 경도된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 특성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9일 3면에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지역에 투입된 인민군대가 피해현장 복구 작업에 나선 모습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다만 김정은 시기 들어 나타난 몇 가지 징후는 이와 관련해 부분적으로나마 이전과는 다른 전망을 제기할 단초를 제공한다. 2010년대 후반 이후 비약적으로 강화된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은 매우 위협적인 요소지만, 역설적으로 기존 전략문화에 경도된 전력·전략 구성으로는 북측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요인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군사력 역량 강화와 함께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 역시 보편적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2016년 단거리미사일 발사훈련 당시 공개된 북측의 전략군화력타격계획 지도는 도심 등 민간피해 대신 한반도 남단의 주요 항구 등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의 전개 통로가 될 군사시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7년에 이뤄진 준중거리미사일 발사훈련은 주일미군 기지를, 그해 여름에는 이른바 '괌 포위사격' 위협을 통해 그 영역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다시 태평양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미군 전력의 역내 진입을 '거부'하는 용도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북한판 A2/AD(Anti-Access & Area Denial·반접근지역거부) 개념인 셈이다.

거부억제 개념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북측 군사전략의 이러한 진화는 분명 우리에게 심각한 군사적 위협의 증가다. 그러나 각 국가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거부억제와 응징억제의 최적 비율을 산출해간다는 다른 국가들의 보편적 군사전략 사고방식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합리적 계산을 통해 기습공격 가능성과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는 게 군비통제의 목표라면, 평양 역시 이러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증가하고 있다는 단초로 풀이할 수 있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100만이 넘는 대규모 지상군을 유지해온 북측 전력구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랜 제재로 소진돼가는 경제력은 또다른 압박 요인이다. 대화국면이 본격화된 2018년 5월을 전후해 김정은 체제가 '인민군의 경제건설 역할'을 강조해온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총정치국장에 임명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수길은 평양시당위원장을 지내며 여명거리 건설을 지휘했던 당사자였고, 이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삼지연 꾸리기, 단천발전소 건설 등의 주요 건설프로젝트가 인민군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다.

닉슨과 레이건 군비통제 체제 협상 주도

한발 더 나아가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경우에도 인민군을 경제개발의 조직적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 해외기업이나 자본, 인력이 북한에 진출해 자유롭게 주민들을 고용하는 '베트남 모델'이 아니라,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공식경제 주체가 외화수입이나 해외 투자를 받은 뒤 인프라 건설 등에 이를 투입하는 '제한된 개방' 모델이다. 그 대표적 사례였던 쿠바는 1990년대 이후 진행된 부분적 대외개방의 주체로 군부를 내세웠고, 이후 쿠바 군부는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는 과두세력(oligarchy)로 성장해 경제의 60%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막대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민군이 향후 해외자본 유치를 통한 인프라 건설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김정은 체제로서는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할 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핵 협상 본격화와 함께 인민군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 정치적 배경인 셈이다. 반면 협상교착이 장기화되면서 '군사적 역할' 강조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평양의 암묵적 계산이 정세변화나 핵협상의 전개에 따라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매우 가역적인 수준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협력안보와 군비통제는 이상주의자의 담론이 아니다. 냉전 시기 양대 진영 사이에서 주요 군비통제 체제 협상을 주도했던 이들은 닉슨과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성향 정치지도자들이었다. 상대든 나든 선제기습을 시도해봐야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인식이 공유되는 때라야 안보가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사활동의 상호 사전통보나 훈련 참관 등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기습행동의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우발적 확전의 개연성을 최소화하는 상호 투명성 보장 및 의사소통 채널 구축은 그 출발점이다.

물론 이를 통해 평양이 그리는 미래가 우리의 장밋빛 기대와 사뭇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코앞의 땅을 디딜 수밖에 없는 첫걸음이 없다면 그 목표 역시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황일도 교수는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아일보 기자, 스웨덴 안보개발협력연구소(ISDP) 방문학자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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