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에 수급인과 동일한 의무부과, “비현실적”

“겉으론 강화, 실제론 뭘 할지 몰라 하는 척만”

“도급인이 어떤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지방 고용노동관서에 물어보면 원론적 말만하지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문서로 질의하면 철회하라고 한다. 도급과 관련된 질문에 감독관들도 자신 없어 한다. 기업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할 노릇이다.” 수도권 소재 한 전자업체 안전팀장의 말이다. 정부가 2018년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해 도급인(원청)의 안전조치 책임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대체 지킬 수가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산안법 제63조는 “도급인(원청)은 관계수급인(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제63조에 명시한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가 무엇인지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제38조(안전조치)와 제39조(보건조치)의 조치를 준용하고 있다. 그리고 제38조와 제39조는 ‘구체적 사항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한다’고 위임했는데, 고용노동부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시행규칙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다 가리키는지 어느 하나만을 가리키는지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이 두가지 고용부령이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에 부과되는 의무를 규정한 것인데, 이를 원청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도급인은 수급인과 똑같은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한다”며 “법이 그렇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청이 해야 할 의무를 원청도 똑같이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 관계자 증언이다. 한 조선업체의 안전부서장은 “고용부가 중층하도급 구조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 원청의 위상에 걸맞은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확실하게 이행하도록 해야 하는데, 무작정 원청한테 그것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니 난감하다. 결국 법을 지키는 척만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원청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원청이 언제, 어떤 행위를,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며 “겉으로는 원청 책임이 강화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무 자체가 불명확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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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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