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말, 산업법 시행규칙 ‘적발후 보고’로 바꿔

“기업주에 산재발생해도 신고말라는 신호준 것”

산업재해 예방의 기초는 정확한 실태파악이다. ‘예방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 1982년 제정 이래 산재발생 보고제도를 운영해온 이유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슬그머니 제도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당시 이기권 장관)는 2016 년 10월 28일자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를 개정해 ‘산재발생시 지방노동관서의 장으로부터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명령을 받은 후 이를 이행하면 보고를 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의 제2항을 신설했다. 고용부 명령을 받지 않으면 산재발생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여서, 사업주에게 노골적으로 산재발생 보고를 하지 말라는 신호를 준 것이다. 이 조항은 현재까지 제73조 제2항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고용부는 시행규칙 개정이유에서 산재발생 보고제도가 바뀐다는 내용을 밝히지 않았고, 단지 제4조제2항을 신설한다며 조문만 표시했다. 산재예방기반 조성에 앞장서야 할 고용부가 그 근간이 되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시킨 것은 산재예방에 아무런 철학과 관심이 없음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안전관리능력이 취약한 사업장의 경우 제도변경을 잘 모를 수 있는 점을 감안하여 예외조항을 두었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관심이 없으니 산재보고통계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2018년 9월 보고서에서 “산재통계의 경우, 보고통계의 기초가 되는 산업재해조사표(사업장→지방관서 보고)의 기재내용(재해발생 개요, 원인 등)에 부실한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며 “보고내용 자체가 전반적으로 부실해 이를 기초로 산출되는 통계의 신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아니지만 산안법에 따라 산재발생보고를 해야 하는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 농·임·어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누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보고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 발생율은 가장 낮은데, 산재 사망률은 가장 높은 기이한 산재통계는 이렇게 탄생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산재보상제도와 별개로 산재보고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노사정이 합의해 법제화된 것인데, 고용부가 무책임하게 합의를 깬 것”이라며 “기초적인 제도를 무너뜨리고 산재예방을 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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