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경영체제' 정부역할 포기, 공단에 떠넘겨

사업 형식화, 인증 늘어도 기업 안전수준 향상 안돼

본지는 지난 9월7일자 20면 기사에서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가장 효율적 방법은 안전보건경영체제의 구축이고, 정부가 안전보건경영체제 확산을 위해 고시 제정 등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고용부는 고시 제정 의무를 삭제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같은 날 보도설명자료를 내 '고시 제정 등 입법 방식보다는 사업장에서 인증신청을 받아 이를 안전보건공단에서 심사해 인증서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부 해명은 고용부가 정부 역할과 산하기관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시는 곧 규제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에 따르면 사업장 안전보건경영체제 확립 지원은 정부의 책무다. 정부가 법적 기준을 정해 기업에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지침(고시)을 만들 필요가 없고 공단의 인증사업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은 앞으로도 정부는 안전보건경영체제에 대한 지침제정과 같은 정책과 방침을 제시하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정책과 기준을 개발하는 것은 공단에서 할 수 없고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정부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채 산하기관인 공단의 인증만으로 충분하다면 정부의 존재이유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현재 안전보건공단은 인증사업과 이에 대한 홍보만 하고 있고, 안전보건경영체제 자체를 보급·확산하는 일과 이것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기 위한 지도·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안전보건경영체제와 관련해 공단에 얹혀갈 뿐 독자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경영체제의 이행과 정착 노력은 하지 않고 인증사업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보니, 기업들이 인증 자체에 매몰되면서 인증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게 기업 안전담당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또 본지는 공단이 만든 기준인 'KOSHA-MS'가 국제기준인 'ISO 45001'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KOSHA-MS에서 용어 정의는 산안법상 용어로 사업장에서 손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정진우 교수는 "KOSHA-MS 규격에는 핵심 용어가 아예 누락돼 있고 ISO 45001 규격과 비교해 정의된 용어의 이해를 돕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며 "규격내용에 있어서도 취지, 원리와 의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도입하다 보니, ISO 45001 규격의 세부내용이 빈약하게, 제한적으로 반영되어 있거나 잘못 표현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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