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역량 강화보다 단발성 지원·지도에 초점 맞춘 결과

중소기업 안전보건 강화 TFT 구성, 노사정 합의에도 '뭉그적'

중소기업의 산업재해를 줄이지 않고는 정부가 밝힌 사망재해 절반 감소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현재 중소기업 대상 재해예방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성과가 낮아 '고비용 저효과'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 산재를 줄이려면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고용노동부는 물량 중심의 단발성 지원 및 지도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중소기업에 고기를 직접 잡아주려고 하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현 정책에는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한 안전활동기법·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다. 종전에 있던 것조차도 없어진 상태"라며 "지난 3월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의결한 '중소기업 안전보건 강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할 노·사·정·전문가 중심 태스크포스팀'을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경사노위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합의문에는 '정부는 향후 중소기업 산재예정책을 논의하고 추진할 노·사·정·전문가 중심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운영한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구성되지 않았다. 사진 경사노위 제공


◆위탁·선임만 확인, 부실화 낳아 = 중소기업은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를 자체선임하기보다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사업주가 외부기관 위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전·보건관리자가 자체선임돼 있더라도 명목상으로만 선임되어 있을 뿐, 실제 업무수행은 관심 밖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고용부의 지도감독이 위탁 또는 선임이라는 형식적 요건 충족 여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업환경측정의 경우, 상태를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고 노출기준이나 허용기준 미만으로 가공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결과 작업환경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불시측정을 통해 이를 바로잡을 수 있음에도 방치하고 있다.

서울 소재 안전관리전문기관 대표 ㄱ씨는 "자체선임도 마찬가지지만 안전보건관리를 외부위탁한 것을 이유로 사업주의 안전보건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이 아님에도, 고용부의 지도감독이 외부기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관심과 의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고용부가 중소기업 지도감독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 보니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보 기술요원이 지원, 도움 안돼 = 중소기업 기술지원사업도 사업장의 자율 안전관리능력을 육성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안전보건 기술지원사업은 사업장당 연간 3회 방문으로 한정돼 있다. 기술지원요원 1인당 배정물량이 200개소 이상(1일 평균 2.5개소 방문)인 경우가 많아 기술지원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1인당 연간 기술료가 초급기술자보다도 낮은 수준의 금액으로 획일화돼 있어 전문인력 확보가 곤란해 기술지원의 질을 확보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경기도 소재 산업안전보건공단 지사 직원 ㄴ씨는 "기술지원사업이 중소기업의 안전보건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기술요원부터가 안전보건에 지식과 경험이 없는데 그 효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산업안전보건전문기관 노조간부 ㄷ씨는 "기관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수수료만으로는 정규직을 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인력요건을 맞추는 데 급급하다 보니 안전보건에 전문성이 없는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산업안전보건공단 지역본부장 ㄹ씨는 "중소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재정·기술지원은 우리나라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데도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은 방향과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물량 위주로 접근하고 실질을 기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가없어 교육효과 담보 어려워 = 영세소규모 사업주의 산재예방활동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실시된 산재예방요율제도 실제 효과보다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 이 제도의 하나인 사업주교육 인정제도는 사업주를 대표하는 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한 후 산재예방계획서를 제출하면 1년간 산재보험요율 10%를 할인해준다.

문제는 사업주가 계획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될 뿐이고 아무런 평가가 없어, 실제 계획서대로 이행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아가 평가를 하지 않으면 계획서 자체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교육효과도 담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울과학기술대 정진우 교수는 "제도의 목적이 사업장의 자율안전관리능력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면, 교육 실시와 계획서 제출에 그쳐서는 안 되고 매년 계획서 이행상황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평가해 필요시 보완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사업주교육 인정제도 인정기간을 1년으로 한 이유는 당초 제도설계과정에서 교육만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며 "인정기간을 3년으로 하고 사업주의 산재예방계획의 이행상황을 1년 단위로 확인한다면 제도의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은 법령 준수 지레 포기 = 비현실적이고 불명확한 규정이나 정책도 문제다. 준법의지가 있는 대기업조차도 산업안전보건법규를 준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조항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법령준수 노력보다 아예 준수할 수 없는 것으로 지레 생각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법령준수 능력과 여건을 갖추도록 노력하기보다, 법위반 사항을 적발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도 소재 지방고용노동관서 소속 현직 근로감독관 ㅁ씨는 "중소기업 현장이 바뀌도록 하려면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 내실화 방안에 대해 본부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본부부터가 형식적인 물량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안전관리능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지 벗어난 '근로자 건강센터' = 상시노동자 50인 미만 영세소규모 사업장은 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없는 점을 감안해 국가 차원에서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근로자 건강센터'도 당초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직업병으로 대표되는 산업보건문제는 복잡하고 증상이 늦게 나타나 노동자가 스스로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의 센터 방문과 상담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사업장을 '찾아가는' 서비스보다는 '앉아서 기다리는' 서비스에 치중하고 있다. 산업보건이 취약한 사업장을 방문하거나 지역적 특성조사, 매스컴 보도, 상담 등을 통해 파악된 단서를 계기로 사업장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찾아오는 것에 기대다 보니 사업실적을 채우기가 쉽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실적을 채우기 용이한 일반질환(작업과 관련성이 없는 근골격계질환이나 성인병 등 생활습관병) 상담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건강센터를 운영하는 한 의사에 따르면, 건강상담 중에서 직업병 상담 실적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한다. 게다가 근로자 건강센터의 서비스 대상이 아닌 5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까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50인 미만의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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