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작성여부만 확인, 기업도 감독대비용 작성 … 기업 안전팀장 "서류상으로만 존재, 아무도 관심없어"

'사업장내 산업법'인 안전보건관리규정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법적의무라 작성은 하지만 애당초부터 이행할 생각이 없고, 노동자는 그런 규정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크다. 고용노동부조차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위상과 취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안전보건관리규정을 노동자가 알고 있는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하는데, 작성여부만 점검하니 기업은 작성만 해놓고 현장작동은 관심 밖이다. 사업장 안전을 지킬 핵심수단이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규정이 작동하지 않는 데는 감독기관 책임이 크다. 사진 고용부 홈페이지

◆안전 핵심장치가 무용지물 전락 = 산업안전보건법규는 노동자 안전을 위해 사업주가 준수해야 할 사항을 일반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사업장마다 유해위험요인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법규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한 절(제2장 제2절)을 할애해 4개 조문(제25조~제28조)으로 사업주가 사업장 특성과 실정에 적합한 안전장치인 '안전보건관리규정'을 만들고, 사업주와 노동자가 이를 지키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사업장 내부규정이지만, 종업원의 안전보건에 관한 직접적이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규정해 현실적으로는 법규보다 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안전보건관리규정은 '사업장내 산안법' 또는 '안전보건에 관한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위상을 갖는다. 노동자가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의문이 생기면 근로기준법보다 취업규칙을 먼저 살펴보듯, 안전보건에 의문이 생기면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살피는 게 정상이다.

선진국에서는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실제로 이행하고 있었다면 산재가 발생해도 면책사유로 작용한다. 이렇듯 중요한 안전보건관리규정이 현장에서는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만들고 나면 서류함에 고이 모셔" = 경기도 소재 대기업 전자업체 안전관리자 ㄱ씨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부터 노동자에게 알려 이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실제 이행하는 사업장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산업안전보건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전보건관리규정과 안전교육"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대기업 식품공장 안전관리자 ㄴ씨도 "안전보건관리규정을 고용부 감독대비용, 전시용으로 작성하지 실천할 생각으로는 작성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기업 안전관계자들도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고 고백했다.

서울 소재 건설회사 안전팀장 ㄷ씨는 "대기업조차도 안전보건관리규정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내용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만들고 나면 서류함에 고이 모셔 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규정과 현장이 따로 논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 의무가 있는 사업장 안전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작성만 해놓고 실천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본부부터 규정 취지 이해해야" = 안전보건관리규정이 작동하지 않는 데는 감독기관 책임이 크다. 앞의 ㄷ씨는 "고용부가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실질적 작동에 관심을 갖는다면 대기업만큼은 서서히 라도 따라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충청도 소재 화학공장 안전팀장 ㄹ씨는 "고용부가 안전보건관리규정이 작성되어 있는지만 확인하니까 기업에서는 규정 내용의 충실성이나 근로자에게 알리는 것에는 영 관심이 없다. 기업 자체가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취지를 잘 모르고 있고, 고용부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아니 근로감독관은 안전보건관리규정에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소재 조선회사 안전부서장 ㅁ씨는 "이제까지 만나본 감독관 중에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소재 지방고용노동관서 산재예방지도과장 ㅂ씨는 "고용부 본부의 정책담당자로부터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고용부는 처벌 중심으로 생각하고 안전보건관리규정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되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본부부터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위상과 취지를 이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의 형해화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게시·비치만 점검, 작동여부 점검 안해 = 실제 산안법 시행령은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규정을 게시·비치하지 않은 경우만 과태료 부과를 하고 있다. 고용부가 내용의 충실성과 함께 실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고, 내용이 부실하거나 작동되고 있지 않으면 다양한 불이익과 연계하는 등 기업의 역량강화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인 지도감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안전보건관리규정은 자율안전관리의 핵심수단에 해당한다. 선진국은 안전보건관리규정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데도 잘 지켜지고 있다"며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이것의 실질적 작동 자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규정의 실질적 작동여부가 유무죄의 결정적 판단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법령에 있는지 여부보다 실제 작동이 더 중요하다"며 "실제 작동을 위해서는 고용부의 안전보건관리규정에 대한 전문지식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정책방침과 지도감독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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