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정보 게시장소, ‘작업장’에서 ‘사업장’으로 축소

‘노동자가 알게 해야 한다’를 ‘알려야 한다’로 바꿔

산재예방을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자가 작업장에 어떤 위험요인이 있고 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의 유해위험요인과 안전수칙을 노동자에게 알리는 게시장소가 산안법 전부개정(일명 김용균법)으로 대폭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개정전 법은 위험요인과 안전수칙을 노동자에게 ‘알게 해야 한다’고 사업주에게 실질적이고 강한 의무를 부과했으나, 김용균법은 이를 ‘알려야 한다’는 것으로 완화했다. 안전을 위한 노동자의 알권리가 크게 후퇴했다.

전부개정 전 산안법 제11조 제1항은 ‘사업주는 법령의 요지를 각 작업장내에 근로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하고 근로자로 하여금 알게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법령의 요지 게시·비치’란 작업장에 존재하는 유해위험요인과 지켜야 할 안전수칙에 관한 법령의 중요사항을 발췌해 노동자가 이를 수시로 볼 수 있게 하는 취지이다.

2018년말 정부와 여당은 ‘김용균법’이라 칭하며 산안법 전부개정을 주도해 제34조에서 법령의 요지 게시장소를 ‘작업장’에서 ‘사업장’으로 바꾸었다. 한 사업장에 여러 개 작업장이 있는 곳이 대부분인데도, 사업장 어느 한 곳에만 법령의 요지를 게시하면 되도록 했다. 같은 사업장이더라도 일반적으로 각 작업장별로 유해위험요인이 다르다. 법적 최저기준으로 작업장 단위 게시를 의무화했지만, 산재예방을 바란다면 작업장내 곳곳에 유해위험요인과 안전수칙을 보기 쉽게 게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도 김용균법은 작업장 단위가 아닌 사업장 한 곳에만 게시하도록 축소해, 노동자들이 유해위험요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약화시켰다.

더욱이 해당조항은 2013년 ‘사업장’이던 게시장소를 ‘작업장’으로 바꿔 노동자 알권리를 강화한 것인데, 문재인정부들어 다시 과거로 후퇴시킨 것이다. 산재예방선진국인 독일, 영국, 미국 등은 노동자의 알권리를 노동자의 주체적 재해예방활동의 전제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법제처 의견에 따라 ‘사업장’으로 수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법제처 심사 훨씬 전인 고용부 입법예고안에 이미 ‘사업장’으로 변경된 것으로 확인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노동자의 알권리에 대한 철학의 빈곤과 무지가 낳은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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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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