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안전관리제도 제 기능 못해 … 뜬금없는 규정개정, 혼란 초래

서류작업 부추기는 현 제도 … 부작용 많은 '중방센터' 폐지해야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물질의 누출·화재·폭발을 '중대산업사고'라 정의하고 특별한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1995년 산안법을 개정해 도입한 공정안전관리제도가 그것이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설비의 위험성평가 결과를 담은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 고용부장관의 심사와 이행평가를 받도록 한 것이 핵심내용이다.

제도도입 25년 지났지만 중대산업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인천 서구 에스티케이케미칼 탱크로리 폭발로 1명이 사망했고, 5월 서산 LG화학 폭발사고, 3월 서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등 화학사고로 인한 소방당국의 출동은 매년 300여건이나 된다.

사고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 공정안전관리제도의 부실한 운영이 한 몫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공단의 공정안전관리제도 소개 포스터. 사진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중대산업사고 고시에 엉뚱한 내용 = 고용부는 2016년 8월 공정안전보고서규정을 개정해 '작업안전 분석기법(Job Safety Analysis, JSA)', 일명 작업위험성평가를 새롭게 도입했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화학사고뿐만 아니라, 추락이나 협착 등의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적용범위가 공정안전보고서 대상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 예방으로 한정돼 있는 '공정안전보고서규정'(고용부 고시)에 엉뚱하게 추락·협착 등 사고 예방기법이 들어간 것이다. 추락·협착 등 사고 예방은 일반 위험성평가에 이미 포함돼 있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업위험성평가는 일반 위험성평가보다 축소된 간이평가를 인정해 주고 있어 위험성평가의 부실을 부추기고 있다. 작업위험성평가는 위험성평가의 핵심에 해당하는 빈도와 강도 추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과학기술대 정진우 교수는 "고용부가 엉뚱한 일을 해 위험성평가 제도에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이라며 "산안법규의 전체 체계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고시를 개정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중방센터 운영으로 혼선과 사각지대 초래 = 고용부는 자체 고시로 전국에 7개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중방센터)를 만들어 공정안전보고서 심사와 이행평가를 위임했다. 이행평가를 통해 P등급 등 4단계 등급을 부여하고 점검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문제는 이 중방센터와 지방고용관서의 업무경계가 모호해 사업장에 대한 감독이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편 제2장의 누출·화재·폭발사고 예방규정에 대해선 지방고용관서에서 감독하지만 중방센터도 감독하고 있다. 그런데 법규정 어디에도 중방센터가 독자적으로 동 규칙상의 화재·폭발·누출사고 예방규정을 점검할 권한은 부여되어 있지 않다. 예방센터는 근거도 없이 소관업무도 아닌 사항을 감독하고 있다.

또 지방고용관서는 중방센터의 존재로 인해 화학사고 예방업무를 센터에 미루며 무관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설령 지방관서에서 관심을 갖고 있더라도 화학사고 예방행정조직이 이원화돼 한 사업장 감독이 종합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실시되지 않고 파편적이고 분절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중방센터에 근무하는 산업안전감독관 ㄴ씨는 "중방센터가 별도로 존재하다 보니 기초조직인 지방관서에서는 화학사고 예방업무에 무관심해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동일한 사업장에 대해 중대산업사고 예방업무는 중방센터가 담당하고 다른 사고예방업무는 지방고용관서가 담당하기 때문에 사업장에 대한 감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선진국 중 지방관서와 별도로 중방센터 같은 조직을 운영하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위법·국제기준과 다른 용어 사용 = 고용부 고시인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 운영규정'이 산업안전보건법령이나 국제기준과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점도 문제다.

산안법 시행령 제43조 제3항은 '중대산업사고'를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사고'로 정의했다. 반면, 위 고시는 '근로자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로 달리 정의했다. 법령은 사망이나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전제로 정의한 반면, 고시는 실제 '발생한 것'을 전제로 했다. 법령과 고시에 큰 간극이 생기다 보니, 고시는 '중대산업사고'와는 별도로 '중대한 사고'라는 법적 근거 없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중대한 사고'는 용어정의도 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국내규정이 국제기준과도 다르다. 국제노동기구(ILO) 제174호 협약 '중대산업재해 방지협약' 제3조는 '위험물질로 인한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는 누출·화재·폭발사고'로 정의했다. 반면, 산안법 시행령 위조항은 '근로자가 부상을 입을 수 있거나, 주민이 인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고'로 규정했다. ILO는 '심각한 위험'을 전제로 한 반면, 우리나라는 '경미한 피해'까지도 포함해 중대산업사고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정 교수는 "결국 화학사고 중 중대산업사고와 일반 화학사고간의 경계가 모호해져 중대산업사고를 별도로 개념정의한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며 "예측가능성이 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규정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이행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적 근거 없는 공단지침 안 지켰다고 권한남용 = 기업이 제출한 공정안전보고서 심사·평가시 안전보건공단의 기술지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고용부의 기술지침은 행정예고를 포함한 제·개정절차가 법령에 명시돼 있고 정부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갖는다. 반면 공단 기술지침은 법적 근거도 없고 정부기관이 제정한 것이 아니라 위상도 약하다. 그렇다고 내용의 전문성과 절차적 측면에서도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고용부 고시인 '공정안전보고서규정'은 제28조 제2항 등 4곳에서 공단 기술지침을 인용하고 있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전 지역본부장 ㄷ씨도 "중방센터 직원 중에 법적 근거도 없고 내용도 검증되지 않은 공단 기술지침 적용을 강요하는 직원이 많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며 "공단에서도 공정안전보고서 담당부서가 산업안전보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하게 일하는 대표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변경절차 규정 없어 입법미비, 부작용도 많아 = 뿐만 아니라 공정안전보고서 변경시 의견수렴 절차가 보장돼 있지 않은 입법미비도 있다. 산안법 제44조 제2항은 보고서 작성시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거나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 변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기업이 심사받은 보고서를 임의로 후퇴시켜도 내부견제장치가 없는 셈이다.

등급심사를 위험요인의 많고 적음이나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선상에 놓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이다. 체급이 다른 선수끼리 시합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 결과 현실에서는 등급심사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면, 대규모 석유화학공장과 중소기업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다 보니,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전자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고 중소기업은 지레 포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안전컨설팅기관에서 공정안전보고서 컨설팅업무 담당 직원 ㄹ씨는 "현실에 맞지 않는 지적을 하는데도 반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중방센터 직원들은 적발에만 관심이 있지 기업의 역량 강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진우 교수는 "공정안전보고서 제도는 미국에서 도입한 것이지만, 미국과 달리 비효율적인 행정조직과 실효성 없는 규제로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