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등급 받으려 외부기관에 과도하게 의존

제도가 형식화 조장 … 안전역량 강화로 연결안돼

지난 7월 인천 에스티케이케미칼 폭발사고를 비롯해 5월 서산 LG화학 폭발사고, 3월 롯데캐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고 등 중대산업사고(화학사고)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예방장치인 ‘공정안전관리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으로 지적됐다.

공정안전관리제도는 위험물질을 다루는 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를 말하는 중대산업사고 예방을 위해 1995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설비와 작업 등에 대한 위험성평가 등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담은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 고용부장관 심사를 받도록 했다. 고용부장관은 보고서를 심사·확인하고, 이행상태를 평가한다.

가장 큰 문제는 공정안전보고서 를 사업장에서 자체 작성하기보다는 대부분이 외부컨설팅기관에 맡기고 있는 점이다. 외부기관에의 지나친 의존으로 실제 위험요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사업장 역량강화로 이어지도록 하려는 제도도입 취지가 실종됐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공정안전보고서 제도가 외부컨설팅기관 돈벌이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안전역량 강화의 수단이 아니라 수검을 위해 보고서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제도가 외부컨설팅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발전회사 안전팀장 ㄱ씨는 “이행상태평가를 해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니까 등급을 잘 받는 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외부컨설팅기관에 불필요하게 의존하고, 실질을 기하기보다 보여주는 데 급급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만 이행상태평가를 하지 선진국은 하지 않는다”며 “실효성은 따지지 않고 다분히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탄생된 이행상태평가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장에서 자체 작성한 공정안전보고서 내용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수준 높은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는 모순도 발생하고 있다. 정 교수는 “잘못된 규정이 공정안전보고서를 심사용으로 최소한의 것만 작성토록 잘못 유도하고 있다”며 “보고서의 형식화와 하향평준화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공정안전보고서 내용의 미준수를 처벌하는 것은 형식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모르다 보니 고용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형식화를 방지하려면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서류작업으로 전락한 공정안전관리제도가 사업장 안전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국제기준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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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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