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달비계'규정 적용 … 고소로프작업 개념정의부터 신설해야

선진국, 별도규정 마련해 보호 … 위험성평가, 하네스착용 등 의무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는 5년마다 재도장공사를 해야 한다. 이런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은 전국적으로 대략 1만6천여 단지가 있고, 가구수로는 1천만가구에 달한다. 공동주택 재도장공사는 대부분 영세사업자가 맡는다. 작업자 혼자 아파트 옥상에 로프를 묶고 내려가면서 작업을 한다. 이런 고소(高所)로프작업은 공동주택 외벽도장뿐만 아니라 일반건물 유리창청소 등 작업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고소로프작업이 자칫하면 추락사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고 실제로 매년 15명 안팎의 사망재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대로 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법적규제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의 지도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달비계는 '매달린 비계' 란 뜻의 'hanging scaffold , suspended scaffold' 란 용어가 사용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용부는 홍보자료에서 이와는 다른 '갑판장의 의자' 를 뜻하는 'Boatswain s Chair' 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OSHA 홈페이지에 나온 달비계의 유형과 한국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홍보한 달비계작업. 서울고용청은 고소로프작업을 달비계작업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달비계와 로프작업 구분못한 고용부 = 안전보건규칙에는 고소로프작업에서의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고소로프작업에 대해 '달비계'작업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올해 펴낸 '달비계 작업 추락재해예방' 문건에서 외벽도장공사를 달비계작업으로 판단해 안전대책을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고소로프작업에 대해 안전보건규칙의 달비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달비계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명백히 잘못된 법적용"이라고 말했다.

달비계란 '매달린 비계(hanging scaffold, suspended scaffold)'를 말한다. 교량공사, 플랜드·조선 유지보수공사, 철골공사시 철골의 들보 등에 작업발판을 달아매는 비계로서 고소작업용 비계이다. 그리고 비계란 이론적·실무적으로 재료운반이나 작업자의 통로 및 작업발판으로 사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외벽도장작업 등에 사용되는 작업의자(작업대)는 달비계가 될 수 없다.

선진국은 고소로프작업과 달비계작업을 엄격히 구분해, 고소로프작업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2001년 유럽연합 안전지침 마련 = 유럽연합(EU) 이사회는 2001년 고소로프작업 등 고소작업에서의 추락재해 감소를 목적으로 단기적인 고소작업의 작업장비 사용에 관한 지침(directive)인 '2001/45/EC'를 채택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도 2003년 고소로프작업의 기본적인 원칙을 규정한 'ISO 22846-1(고소로프작업에서의 추락재해 방지를 위한 개인보호장비 규격)'을 제정했다. 2006년엔 고소로프작업에 사용하는 작업장비에 관한 유럽규격(EN규격)이 제정됐다. 국제표준화기구는 2012년 고소로프작업의 실행지침에 해당하는 'ISO 22846-2'를 제정했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EN규격'과 'ISO규격'에 규정돼 있는 고소로프작업에서의 추락재해 방지규정을 자국의 법령에 반영해 이행하고 있다.

최근 선진국의 고소로프작업 규정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고소로프작업을 하기 전에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한 점과 작업대가 위험하다는 점을 고려해 '하네스(harness)'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 영국, 별도 규정 마련해 보호 =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도 달비계와 구분해 '로프하강시스템(Rope descent systems)'이란 별도 규정에서 상세한 안전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건물 소유주는 고소로프작업 사업자에게 로프하강시스템 사용전에 각 고정장치를 테스트하고 어느 곳이든 최소 5000파운드(약 2.2톤)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또 자격을 갖춘 사람의 지시에 따라 사용해야 하고, 각 직원은 별도 지침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상세한 안전장치를 규정했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도 유럽연합 규정을 반영한 고소작업규정(The Work at Height Regulations 2005)을 제정해 로프접근(Rope Access)작업을 별도로 규정했다. 이에 의하면 최소한 두 개의 별도 로프를 마련해 작업라인 이외에 안전라인을 의무화했고, 작업라인은 사용자가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할 경우 넘어지지 않도록 자체 조정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또 안전라인은 시스템 사용자와 연결되고 이동식 낙하보호 시스템도 갖추도록 했다. 단일 로프시스템도 허용하고 있는데, 위험성 평가에서 두번째 라인을 사용하는 것이 개인에게 더 높은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이 입증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개념정의·다중적 안전조치 신설" =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같은 별도의 안전규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정 교수는 "고소로프작업은 다른 고소작업과는 현격히 다른 작업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안전보건규칙에 별도의 위험방지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소로프작업은 작업발판을 설치할 수 없는 작업이어서 로프의 연결·점검·절단 방지조치와 이것들의 확인 등 사람의 주의력과 기능에 의존하는 측면이 큰 만큼 고소로프작업의 특성에 걸맞은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로소로프작업 위험방지를 위해서는 정의규정부터 두어야 한다"며 "높이 2미터 이상의 장소이고 작업발판을 설치하는 것이 곤란한 곳에서 승강기구를 이용해 근로자가 당해기구에 의해 신체를 유지하면서 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어 "승강기구란 작업장소의 위에 있는 지지물에 로프를 연결해 매달고, 당해 로프에 근로자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신체유지기구를 부착한 것으로서 근로자 스스로 조작해야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이런 정의를 안전보건규칙에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추락방지조치 그 자체를 다중(多重)화하고 조치상황 확인도 다중화하는 것에 의해 리스크를 저감할 필요가 있다"며 "고소로프작업은 사람의 주의력과 기능에 의존하는 면이 많은 이상, 작업자에 대해 이론과 실기 양면에서 충실한 안전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사비에 충분한 경비 반영해야" = 구체적 추락방지 대책으로 정 교수는 △로프의 결속 △사전조사·기록 및 작업계획 수립 △작업지휘자 지정 △특별안전교육 실시 △안전대·보호구 착용 △작업개시 전 점검실시 △위험성 평가 △사고조사 통계 및 결과 공개 △발주자에 대한 의무 등 9가지를 제시했다.

특히 선진국과 같이 시공업체를 대상으로 작업개시 전에 위험성 평가를 하도록 해야 한다. 위험성평가가 안전관리의 기초적 수단이고 법적 의무인 만큼, 고소로프작업시 위험성평가를 어떤 형태로든 실시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발주자에게 공사비 산정시 안전을 위한 충분한 경비를 반영하고, 수급업체 선정심사시 산업안전보건기준 준수능력을 확인하는 의무 등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