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촉진' 규정 안돼 갈팡질팡

'처벌위주 행정' 조장 … 자율안전관리 등한시

산업안전보건법 제1조 목적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업안전보건관리의 양대축인 최저기준으로서의 '법적기준 확립'과 '자율관리' 중 후자가 빠져 있고, 그로 인해 책임추궁에만 집중하는 행정이 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산안법의 목적에 '사업주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촉진을 위한 조치의 추진'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큰 입법적 공백"이라며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정책의 기조와 방향설정에서 많은 혼선을 초래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적 최저기준 확립만으론 한계 = '이 법은 산업안전보건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 유지·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산안법 제1조 목적 조항이다.

산안법은 노동자의 안전보건 유지·증진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산재예방과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을 하위목적으로 설정했다. 그 목적달성 수단으로 산업안전보건기준 확립과 책임소재 명확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목적달성 수단에서 '사업주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촉진'이 빠졌다는 게 정 교수 지적이다.

정 교수는 "사업장 작업환경의 다양성과 급격한 기술변화 등을 고려할 때, 최저기준 확보에 중점을 둔 규제방법만으로는 산업재해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며 "사업주가 사업장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자율적 안전보건활동을 활성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이라는 법의 하위목적은 주로 사업주의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며 "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의 촉진조치는 반드시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관리 소홀히 취급하는 고용부 = 산재예방 수단으로 법적 최저기준 확보와 책임소재 명확화만 규정돼 있다 보니, 산안법이 명령통제 일변도의 기준설정과 집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실제 그간 정부에서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최저기준의 집행과 처벌이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율적 예방활동 촉진조치에 대해서는 감독면제(유예)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이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며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을 법적 기준 준수와 대체(代替) 관계로 잘못 인식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자율적 재해예방활동의 핵심기법으로 평가받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OSHMS) 지침 제정에 대한 인식 자체가 고용부에 없는 것도 이런 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2013년 8월 정부는 산안법 시행령을 개정해 '고용부장관은 사업주의 자율적인 산업안전보건경영체제 확립을 위해 안전보건경영체제 운영 등의 기법에 관한 연구 및 보급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2019년 1월 이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지침 제정 근거를 삭제하는 어처구니없는 개정을 하고 말았다. 고용부는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에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업무만을 맡겨놓고 스스로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대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산안법 목적 조항에 있는 '책임소재'라는 표현도 '책임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책임소재로 규정되어 있다 보니 '사후책임'에 해당하는 책임추궁의 의미로만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다"며 "책임체제 명확화로 규정해야 책임추궁 외에 사전책임까지를 포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제정 당시 개념과 중요성 몰라" = 우리나라 산안법의 본보기가 됐던 일본 노동안전위생법은 법의 목적에 기업의 '자율적 활동의 촉진'을 명확히 규정했고 '책임체제의 명확화'로 표현하고 있다. 노동안전위생법 제1조는 '이 법은 (중략) 노동재해 방지를 위한 위해방지기준의 확립, 책임체제의 명확화 및 자주적 활동의 촉진을 강구하는 등 (중략) 직장에서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와 쾌적한 직장환경 형성촉진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우리나라 산안법은 1990년 노태우정부 시절 전부개정 때 규정된 제1조 목적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 교수는 "산안법 전부개정 당시에 자율적 재해예방활동과 책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산안법은 곧 처벌법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잘못 규정한 것 같다"며 "2018년 산안법 전부개정과정에서 이 목적조항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고용부는 귓등으로 흘렸다. 고용부가 산재예방에 대한 철학이 빈곤하다 보니, 목적조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법적 기준은 일률적이고 일반적이라 개별 사업장의 구체적 실정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자율관리다. 하지만 자율관리라고 해서 모두 자율에만 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관리 중 중요한 사항의 경우, 그 세부적인 내용은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지만 방향과 틀은 산안법에 의해 강제돼 있다. 제2장 제1절 안전보건관리체제, 제2절 안전보건관리규정, 제36조 위험성평가 등이 그것인데, 이 자율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재예방이 법적기준 준수와 자율관리의 두 바퀴로 추진되고 안전관리에 대한 사전책임이 명확하게 설정되기 위해 산안법 목적 조항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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