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올해 63조원 순매수 … 2030세대 대거 유입, 투자자 100만명 증가

정보력·조직력·실탄 갖춘 개미들, 증시 관련 경제정책에도 강한 영향력 행사

올해 한국 증시는 사상최고치를 잇따라 갈아치우며 새역사를 썼다. 증시 상승의 주인공은 단연 동학개미들이다. 올 한해 100만명이 증가한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사태 폭락장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됐다. 예전과 달리 정보력과 조직력, 실탄을 갖춘 동학개미들은 지수 상승뿐만 아니라 증시관련 제도개선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코로나19 폭락장 때 대거 유입 =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초부터 이달 14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46조5541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에서도 16조9318억원어치를 사들여 총 63조4859억원 순매수 중이다. 코스피에서 기관투자자들이 25조2654억원, 외국인 23조8872억원을 팔아치운 주식을 오롯이 받아내면서 코스피 붕괴를 막고 더 나아가 상승장으로 이끌었다. 코스닥에서도 기관 10조7886억원과 외국인 1조628억원의 매도물량을 다 받아냈다.

그 결과 코스피는 역대급 상승랠리를 펼치며 전일 장중 2782.25를 찍으며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1900선 붕괴를 염려하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코스닥 또한 930선을 넘어서며 작년 600선 붕괴를 우려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힘이 됐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고 나갈 때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폭락장 이후 대거 주식시장에 뛰어들면서 증시의 큰 세력으로 등장했다.개인투자자의 순매수는 2월말부터 대형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코스닥·중소형주를 주로 매수하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대형주를 위주로 순매수하며 단기매매 중심에서 장기 투자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올해 초부터 이달 14일까지 개인투자자 순매수 상위 10개종목을 보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가 나란히 1, 2등을 차지했다. 총 13조5645억원어치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이어 현대차와 네이버 카카오 등 개인투자자들은 시가총액 상위주에 투자를 집중했다. 대형주에 대한 장기투자가 높은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이 바뀐 원인으로 '경험에서 우러난 학습효과'를 꼽았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주가 폭락과 회복을 지켜본 개인 투자자들이 '급락 이후 반등'이라는 경험을 학습했다는 분석이다.

◆개인 증시대기자금 150조원 … 주식참여 인구 증가 = 개인투자자들의 추가 매수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시대기자금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이들의 자금여력은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대기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 예탁금은 11일 기준 61조3621억원에 달하며 연초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도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며 62조1223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단기자금으로 분류되는 개인의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잔액은 24조8813억원에 달한다. 총 15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주식참여 인구증가도 주목할 점이다. 지난 1일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식거래활동 계좌는 3475만6101개로 전년 동기(2927만2283개)보다 18.7% 늘었다. 1년 새 약 550만개가 늘어난 것이다. 주식투자 인구는 지난해 600만명(한국예탁결제원 추산)에서 올해는 최소 100만명 증가한 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30세대가 주식시장에 본격 유입됐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주요 증권사들에 따르면 올해 신규 개설 계좌를 한 투자자들 중 절반 이상은 2030대였다.

KB증권은 "개인 수급에서 주목하는 점은 '주식 참여 인구 수'의 증가"라며 "이는 단순히 고객예탁금이 증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2004~2007년 등 예전 사례를 보면 개인 수급이 주식시장을 주도하고 주식 투자자 수가 이례적으로 증가했을 때 구조적 강세장이 왔다"며 "내년 1월부터 개인 자금이 다시 한 번 증시 상승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빚투'(빚내서 투자)에 대한 경고는 여전히 우려로 남는다. 11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8조848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에 달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빌린 금액을 말한다.

◆입김 세진 개미들 = 올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역할은 지수 상승 견인만이 아니다. 동학 개미는 증시관련 정부 정책 결정에도 적극 개입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를 중심으로 조직력과 정보력을 갖추며 힘이 세진 개인투자자들은 먼저 '금융 세제 개편안' 관련 논란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당초 기재부는 국내 주식으로 2000만원 넘게 번 투자자에게 양도 차익 20%를 세금으로 물리는 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동학 개미들은 '사실상 증세'라고 반발하며 단체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 금융세제개편안은 5000만원 이상으로 기준이 수정됐다.

대주주강화요건도 없던 일이 됐다. 기재부가 내년부터 대주주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춘다는 방침에 동학개미는 거세게 항의했고, 기재부는 현행 수준인 10억원을 유지하기로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3월 코로나 폭락장에서 공매도 금지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어 한시 조치가 끝나는 9월을 앞두고 개미들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거나 아예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공매도 금지를 내년 3월까지 연장하는 건 물론, 각종 제도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달 국회에서는 불법 공매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에는 내년 3월 재개가 예정된 공매도를 둘러싸고 금융당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투연은 '불법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없이 공매도를 재개해서는 안된다며 △종목별 공매도 총량 상한선 설정 △시장조성자에 대한 금감원 특검 △T+1로 결제일 변경 △개인투자자 보호 전담 조직을 신설 △지난 10년간 상장폐지 종목에 대한 원인 분석 연구 용역 실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2021년은 부동산 광풍을 잠재우고 건전한 주식투자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라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도 개인투자자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자본시장 결산"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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