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장 싹쓸이 … 쟁점법안 단독처리 불사

지지율 하락, '과반 갖고도 법안 처리 못한다' 해석

야권, 원 구성 등 돌리고 '반대 투쟁' 몰두 영향도

국회 174석의 힘은 셌다. 18개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표결'로 결론을 냈다. 올해 안에 주요 입법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당의 판단에, 야당의 보이콧을 포함한 반대투쟁 전략이 맞물린 현상이다.

특히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의 조정현상이 나타날 때 민주당은 '과반의석을 갖고도 개혁작업을 이루지 못한다는 질책'이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공수처법 개정안 가결에 국민의힘 의원들 항의│야당의 비토(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립해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출발부터 무리수 두며 독주 예고 = 민주당의 국회 독주는 21대 국회 원 구성부터 예고됐다. 원 구성 법적시한(6월 8일)을 20일을 넘기고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사실상 보이콧에 들어갔고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18석(정보위원장 포함)을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상임위부터 절대 우위를 점한 민주당은 법안소위- 전체회의에서 힘을 과시했고, 본회의 직전 관문인 법사위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댔다. 21대 국회 출범에 맞춰 상임위와 법안소위 활성화를 골자로 한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당론으로 제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7월말과 8월 초에는 임대차 3법과 부동산거래신고법 등 부동산 관련법을 밀어붙였다. 일부는 법안소위를 생략하기도 했다.

야당의 반발은 '민생 우선'을 명분으로 몰아붙였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신속한 입법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추가 논의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온전히 책임진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입법과 제도개혁의 최적기"라고 했다.

9월부터 시작된 정기국회에선 15개의 미래입법 과제를 제시하고 '연내 통과'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기국회가 끝난 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하는 국회를 실천하기 위해 9월 1일 개의 이후, 총 15회 본회의 중 6회 법안처리를 실시하여 총 400여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총 108건의 주요 입법을 추진, 처리했다"고 했다. 그는 "국민이 요구하신 개혁·민생·정의·공정의 4대 가치 실현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대한민국,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며 "민주당은 전 상임위에 걸쳐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민생·경제입법에 총력을 다했다"고 했다.

공수처법 개정안, 세월호참사 특별검사 요청안, 5.18 특별법,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공정경제 3법 등 쟁점 법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공수처법에서 '야당 동의를 전제로 한 처장 추천'을 제도화 한 조항을 개정 처리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해선 정의당 의원을 속이고 수정안을 통과 시키기도 했다.

◆"개혁 성과로 절차상 혼선 극복 가능" 판단한 듯 = 야당의 반발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여론의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여권은 '개혁을 위한 진통' 정도로 여겼다. 여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공수처법 개정안의 경우 엠브레인 등 4개기관의 지표조사(12월 14~16일.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결과 비판적 의견이 높았다. 공수처 출범이 검찰개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46%)이 높게 나타난 가운데, 야당 비토권을 배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선 '잘못한 일'(43%)이라는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잘한 일' 39%)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일방적 처리나 절차상의 혼선 등이 중도층 여론에 불리하게 작용하겠지만 핵심지지층 결집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올해를 넘기면 4월 보궐선거와 여야의 대선후보 경선 국면으로 돌입해 여권의 정국주도권을 장담할 수 없다는 시기적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엄 소장은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지지층이 결국 진보-보수 극단으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도 반영된 선택"이라며 "중도층의 부분적 이탈이 나타나더라도 야당으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수야당 '서러운 국회생활' = 보수야당은 총선참패 후유증으로 국회에서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예고된 패배 속에서 '발목잡는 야당'과 '무기력한 야당' 사이를 오갔다. 원구성은 물론 법안·예산 등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권력 견제를 위해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해야 한다며 초반 배수진을 쳤지만 거대여당의 양보를 받아낼 방법은 없었다. '전후반기를 여야가 나눠서 하자'고 한 걸음 물러서도 소용없었다. 통합당은 18개 전 상임위원장을 포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결기와 함께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였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 자리를 포기했다.

상임위원장 포기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갈리는 모습이다. 법사위원장을 놓고 워낙 첨예하게 맞붙었기 때문에 명분을 쌓는 것 외에는 활로가 없었다는 불가피론, 상임위원장 자리 7개를 챙기고 타협을 했다면 향후 상임위별 대여투쟁이 한결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실리론'이 교차한다.

실제 상임위원장을 포기한 대가는 피부에 와 닿았다. 야당이 반대한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국정감사와 정기국회도 더 이상 '야당의 시간'이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라임·옵티머스 의혹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병역의혹 △공무원 피격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벼르며 증인 채택을 추진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검 추진도 흐지부지 됐다. '최후의' 독주저지 수단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수처법 및 국정원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벌였으나 6일 만에 재적의원 5분의 3을 확보한 범여권에 의해 '강제종료'를 당했다.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소장은 "약해진 당세에 맞는 원내전략에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하는데 과거식 투쟁에 대한 유혹, 지도부와 원내의 엇박자 등이 이를 방해했다"며 "새해에도 여대야소 구도는 그대로인 만큼 야당의 창의적인 전략 변화가 절박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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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 이재걸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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