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목표 11월 집단면역까지 경제 불확실 … 지난해 통화량 급증 불구, 유통속도는 떨어져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진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2021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백신 보급과 접종에 따른 코로나19의 점진적 수습과 이에 따른 경기 반등을 기대하지만 여전히 변수도 많다. 올해 예상되는 △통화신용정책의 전망과 영향 △코로나19 정책자금 지원 실태 △금융시장의 위험요인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국은행이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현행 0.50%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한 조치다. 한은은 그러면서 국내경제가 안정적인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물가도 당분간 낮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여 기준금리를 바꿀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발권국에서 대규모 추석자금을 방출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이주열 "백신 보급상황 지켜볼 것"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향후 통화정책 결정의 방향과 관련해 코로나19 백신 보급상황을 가장 우선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회견에서 "앞으로 한국은행은 국내경제가 안정적인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될 때까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방침"이라며 "코로나19의 전개와 백신 보급상황 그리고 그것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는 가운데 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발언은 백신 접종과 이를 통해 집단면역이 형성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아와야 경제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어느정도 제거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신이 사실상 한은 통화정책 방향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올해 11월은 되어야 국내에서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8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계획은 인플루엔자 유행 전인 11월 정도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두번 접종을 3~4주 내에 해야 하는데 모두 접종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다"고 말했다. 방역전문가들도 현재 백신의 수급 실태와 정부의 백신접종 계획 및 속도 등을 고려하면 아무리 빨라야 연말에나 집단 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기준금리 결정의 대외 변수인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도 당분간 현재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최근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등 조기에 미 연준이 대규모 양적완화(자산매입)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파월 의장은 부정적인 의사를 분명히 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4일(현지 시간) 모교인 프린스턴대 주최로 열린 온라인 대화에서 "금리를 올릴 때가 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지만 그 시기가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산매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연준의 자산 매입도 당분간 축소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 연준은 매달 12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의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15일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강승원 연구원은 "한은은 당분간 현재의 완화적 스탠스를 유지하며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 등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2021년 기준금리 동결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통화승수 갈수록 떨어져 = 한국은행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역대 최저금리 수준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지만 늘어난 통화량이 생산적인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통화량(M2 기준)은 계절조정기준 3178조4000억원 수준으로 전달에 비해 27조9000억원(0.9%) 증가했고,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9.7% 늘었다.

하지만 통화량은 늘어난 데 반해 시중에 돈이 얼마나 잘도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통화량/본원통화)'는 지난해 9월 현재 14.44배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14.85배로 사상 처음 15배가 깨진 뒤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발행한 본원통화에 비해 금융기관 등을 거치면서 창출된 신용의 총량인 통화량의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 수록 시중에 돈이 잘돌고 있다는 의미다.

통화유통속도(명목 국내총생산/통화량)도 지난해 2분기 0.6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3분기에는 0.63으로 소폭 개선되는 데 그쳤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에 사용되는 횟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 수록 그만큼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의미다.

한편 지난해 5월 이후 0.50%의 역대 최저금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통화량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늘어난 총통화량(M2)은 원계열기준 3046조505억원에서 3183조5009억원으로 137조4504억원(4.5%)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저금리 수준이 상당기간 유지되던 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빠른 편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 2009년2월부터 무려 17개월간 기준금리가 2.00%로 유지됐을 때는 195조1262억원(13.4%) 늘었고, 2016년6월부터 1.25%의 기준금리가 17개월 동안 유지된 때도 187조5301억원(8.0%) 늘었다.

하지만 현금과 요구불예금 등으로 구성된 좁은 의미의 통화(M1)는 예전에 비해 속도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0.50% 최저금리 이후 M1은 6개월간 105조5583억원(10.2%) 늘어났다. 이는 과거 역대 최저금리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다. 2009년2월 이후 17개월간 M1은 20.7%, 2016년6월 이후 17개월간 11.9% 증가했다. 한은은 특히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년도 11월과 비교하면 M1은 무려 26.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M1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의미는 기업이나 가계가 그만큼 현금 또는 언제라도 현금화가 가능한 요구불예금 등을 수중에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들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현금 수요를 높이는 것도 M1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와 통화량은 반드시 비례해서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M2는 경제주체가 경기에 대한 현재 판단과 미래 전망을 기초로 크기가 결정된다"며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통화량 증가는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한은과 금융기관이 기업의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서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보충해 준 것이어서 일반적인 통화량 증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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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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