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없도록 인프라 설계 보완 … 스마트 충전 시스템도 고민할 때

'전기차 급속충전기는 고도화, 완속충전기는 사각지대 해소'.

전기차 충전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내놓은 '투트랙' 전략이다. 이민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사무총장은 "공공시설 등 상대적으로 설치하기 편한 곳들 위주로 전기차 충전 지역을 선정하다 보니 사용자들이 원하는 곳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충전사각지대가 없도록 인프라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기차 충전기 확대를 위해 각종 정책들을 펼치고 있지만 시민들의 체감도는 낮은 편이다. 사진은 경기도 분당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기들. 사진 이의종


◆급속충전기에 치중? 우려 목소리 =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차 공용충전기 수는 6만4188기(2020년 12월말 기준)다. 이 중 급속은 9805기, 완속은 5만4838기다. 급속충전기의 경우 2017년 3343기에서 불과 4년새 3배가량 급증하는 등 상승세가 가파르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늘고 있는 시장 상황에 제때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완속충전기 50만기, 급속 1만7000기 보급 목표를 발표했다.

환경부는 3월까지 최적 입지 선정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상 이용률이 높은 부지 중심으로 급속충전기 880기를 구축하기로 했다. 급속충전기는 통상 100kW급을 말한다. 약 400km 주행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를 80% 충전하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 350kW급 초급속충전기가 설치되면 약 20분만에 충전할 수 있다.

이 사무총장은 "2009년 이명박정부는 제3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전기자동차산업 활성화방안'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전기차 200만대 시대를 열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일관성없는 정부 정책 탓에 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던 잘못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장밋빛 목표보다는 집행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용희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장는 "최근 정부가 충전기를 너무 급속 위주로 보급하려 한다"며 "장거리 이동상의 거점들에서는 다수의 급속충전기가 효과적이지만 아파트 등의 주거공간과 회사 등의 근무공간에 완속충전기들이 많이 설치될 수 있도록 법규 강화, 지원확대 등 유인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를 탄지 5년째인 김지석씨(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는 "생활패턴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의 경우 집이나 직장 등 오랜 시간 머무는 곳에서 충전을 하는 게 편하다"며 "복합쇼핑공간에 가면 급속충전기로 충전을 하면 충전시간이 끝날 때에 맞춰서 일을 보다가 내려와 차를 빼야 하는 등 번거롭다"고 말했다.

환경부와 산업부 등은 "급속충전기는 물론 완속충전기 보급에도 당연히 신경을 쓰고 있다"며 "전기차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용자 편의성 높이기 위해 관련 법 개정 추진 중 = 김지석씨는 "전기차를 구입하고 싶어도 주민협의체에서 주차장에 충전기 설치를 반대해서 난처해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며 "완속충전 요금이 급속보다 저렴한데다가 편한 건 아무래도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충전할 수 있는 집이나 회사인데, 이게 충족이 안 되면 사실상 전기차를 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기차 충전 장소에 휘발유차 등 다른 차량이 주차돼 충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련 법이 있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차법) 11조의2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구역(급속충전기)에 휘발유차를 주차하거나 물건을 쌓아두는 등 방해를 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2017년 4월 6일 이후 완공된 건물(주차면 100면 이상)에 설치된 급속충전기에만 이러한 규정이 해당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련 법 개정안이 17일 발의됐고 통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장섭(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친환경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충전시설 및 전용주차구역의 설치 의무를 부과·확대하고 충전기 관련 단속 강화 등이 주요 골자다. 단속 및 과태료 부과 권한을 현행 시·도지사에서 시·군·구청장에게 위임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 체계상에서는 전기차 충전지역에 다른 차량이 주차를 해도 담당공무원 부족 등으로 제때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수요자원으로 활용 가능성, 기술 개발 필요 = 전기차 충전소 확대와 함께 에너지 시스템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로 탈바꿈하는 것도 중요한데다 전기차가 증가할수록 통제되지 않은 충전은 계통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E-mobility 성장에 따른 석유·전력·신재생에너지 산업 대응 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는 대규모 확산 단계로 진입 중이며 충전 시스템이 제대로 관리 되지 않을 경우 전력수요, 피크부하 및 배전계통(전기에너지를 총괄 전력시스템 등으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의 일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통합에너지시스템, 수송 부문에서의 신·재생에너지와 E-모빌리티 간 상호연계 가능성과 그 효과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E-모빌리티란 이바이크(E-bike), 페델렉(Pedelec) 등 전기로 움직이는 차세대 이동수단을 말한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조일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관리되지 않은 전기차 충전은 배전계통 운영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러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마트 충전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스마트 충전이란 전기차 사용자가 허락하면 전력피크 수요 시에는 충전 속도를 늦추거나 전력 수요가 적은 시기에 충전을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전력수급이나 계통운영에 대한 고려없이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전기차를 충전하는 현 시스템과는 다르다.

실제로 2019년 전기차가 소비한 전력량은 전세계적으로 약 80TWh 수준으로 2018년 대비 40%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STEPS 시나리오(기존에 각국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공표한 에너지개발 및 보급 등의 정책을 모두 시행할 경우)에 따라 2030년 전세계 전기차 보급이 1억4000만대 수준으로 증가하면 전기차가 소비하는 연간 전력량은 약 550TWh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스마트 충전 시스템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시 나타날 수 있는 전력수요와 공급 균형 유지 어려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V2G(Vehicle to Grid)기술을 통해 전기차를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DR(전기 사용이 집중되는 시간에 전기사용을 줄이면 보상)처럼 전기차도 유연성 자원(전력수급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발전과 부하를 조절하는 능력)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V2G란 전기차가 가지는 전기충전 비효율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충전식 친환경차를 전력망과 연결해 주차 중 남은 전력을 이용하는 개념이다. 전력망을 통해 전기차를 충전했다가 주행 뒤 남은 전기를 다시 송전(방전)하는 식이다.

["탄소중립사회, 무공해차 전환 길을 묻다" 연재기사]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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