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회사채보다 느슨한 녹색채권 발행 문제

유럽·미국·일본 등 주요국, 규제 강화 본격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류로 급부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ESG 투자에 대한 관심 빠르게 확산하면서 많은 투자자들과 기업들이 ESG 요소를 투자 및 기업 활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ESG 관련 금융상품 또한 채권과 ETF(상장지수펀드), 주식형펀드 등 다양한 형태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ESG 관련 정확한 기준과 평가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관련 정보 창구도 부족한 현실이다. 이를 틈타 ESG 이름만 포장해 금융상품을 만드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금융사들의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은 ESG 발전과 투자 확대에 오히려 타격을 줄 수 있다며 ESG 기준과 평가를 강화해야한다는 강조했다.

◆코로나, ESG 투자 터닝포인트 =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ESG 경영과 투자가 관심을 끌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이었다면 올해는 실질적인 ESG경영과 투자가 시작되는 큰 걸음을 시작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글로벌 ESG 채권 발행액은 약 5000억 달러 규모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고 올해는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독일 등이 ESG 발행 규모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유럽 주요국은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채권이 발행되고 있다. 지난 2016년 ECB의 양적완화로 회사채 매입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매입 조건에 '기후 위험'을 포함한 이후에는 일반 기업들의 ESG 채권 발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NNIP의 아드리 하인스브루크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는 "지속가능 투자의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큰 요인 두 가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EU의 지속가능 금융규제에 관한 새로운 체계'"라며 "이 두 가지 요인이 투자 지형을 변화시키고, 2021년 이후 자본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ESG 채권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매년 녹색 채권이 가장 활발하게 발행됐다. 다만 지난해에는 코로나 확산 여파로 사회적채권과 지속가능채권 발행이 예년보다 급증했다. 사회적채권이 ESG채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6.0%에서 지난해 31%로 확대됐다.

국내 ESG 채권은 여전히 사회적 채권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녹색채권은 1~2% 수준으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녹색채권 발행이 증가하는 추세다. ESG 채권 발행 주체 또한 기존 공공기관, 국책은행, 정부 중심에서 점차 일반은행, 증권·카드사, 일반기업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국내 ESG 채권 발행은 2018년 4건에서 2020년 23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는 시중은행과 증권·카드사사의 ESG 채권 발행 증가하며 2월까지만 7건에 달한다. 비금융 일반기업의 국내 ESG 채권 발행은 2018년 1건에 그쳤으나 올해는 지난달까지 만 14건으로 급증했다. 일반기업들의 ESG채권 발행은 대부분 녹색채권이다. 녹색채권이 발행자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추진하던 친환경 활동을 대외적으로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향상에 기여. 또한 투자자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등 우호적 여건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SG 투자시장은 올해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이미 지난해 액티브 자산 모두에 ESG 기준을 반영하며 투자기업에 도 공시 강화를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자산 소유자의 80%가 투자 프로세스에 적극 통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NNIP)는 강화된 ESG 기준을 적용한 ESG 통합 운용자산 규모를 2019년 68%에서 2020년 말 74%까지 확대했으며, 2023년까지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2025년에 유럽에서는 ESG 펀드 수가 전통 펀드 수를 초과할 것이라 예측한바 있다. ESG 채권증가 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10년 내 전체 채권에서 ESG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린워싱 기업·상품 속출 = 하지만 ESG관련 정확한 기준과 평가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자금조달을 위한 채권과 금융상품을 'ESG'라는 이름으로 포장만 하는 그린워싱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ESG 인기에 편승한 '무늬만 ESG'인 금융상품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일례로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한국남동발전의 경우 올해 초 30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번 발행금액 전액을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며 "녹색채권 발행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진성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는 대규모 발전 사업자에게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을 의무화한 제도인데, 남동발전의 경우 녹색채권을 발행한 금액으로 REC를 구매한다는 것으로 녹색금융보단 화석연료발전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이다. 발행한 ESG채권은 녹색 사회적 사업에만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ESG 채권 발행을 대대적으로 홍보만 한 뒤 실제 기업운영에서는 환경오염물질 배출 개선 등에 노력하지 않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ESG 이름으로 출시되는 펀드의 포트폴리오도 다른 주식형 펀드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익률 부분을 고려한 대형주 위주로 구성된 펀드가 절반이 넘는다. 때문에 ESG 펀드의 신뢰성·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SG 펀드로 분류되어 판매되고 있는 펀드들의 상당수가 운용 스타일이나 종목구성에서 다른 일반 주식형 펀드와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고 있어 투자자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회사채보다 느슨한 ESG채권 인증도 문제다. 현재 ESG채권을 발행할 땐 회계법인 4곳과 신용평가사 3곳 중에서 자율적으로 기관을 선택해 채권 발행 인증을 받게 된다. 발행 인증을 최소 두 군데서 받아야 하는 회사채보다 기준이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또 기업이 '친환경 경영'을 위한 자금조달이라며 채권을 발행한 후 실제 그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감시하는 사후 인증은 의무화가 아니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에서는 ESG 채권으로 인증받기 위해 준수해야 할 요건에 대한 법률이나 감독 규정과 같은 공적인 규제는 없어 업계 등 민간 자율에 의해 규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SG 채권 발행사는 ICMA의 사회적채권 준칙과 녹색채권 준칙에 맞춰 발행계획을 수립하고 전문기관으로부터 검토의견 또는 인증을 받고 있다. ESG채권을 발행하기 위한 대표적인 글로벌 표준 기준으로는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에서 제정한 녹색채권원칙(GBP)과 사회적채권원칙(SBP), 지속가능채권가이드라인(SBG)가 있다. 자금의 용도, 투자 프로젝트의 평가 및 선정, 자금의 관리, 외부 검토 및 사후 보고와 같이 4가지 주요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평가기관별로 상이한 기준을 사용한 결과 동일 기업에 대한 ESG 점수가 기관별로 다르고 투자자들이 ESG 채권들을 상호비교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한편 글로벌 주요국가들은 ESG 등급 강화를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은 ESG 등급 강화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펀드 명칭 규정을 검토하는 중이다. 일본 금융청도 오는 6월까지 ESG 기준과 규제에 대해 방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EU의 '지속가능 금융공시 제도(SFDR)'와 'EU 분류체계'는 ESG 관련 대표적인 규제 조치다. 10일(현지시간) SFDR를 실시하기 시작한 EU는 올해 안에 탄소국경세 관련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SG 그린워싱 막아라"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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