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기업·금융사 ESG 기회·위험 공시 요구 급증

국제회계기준위원회, 올 상반기 ESG 회계 표준 제정

책임투자관련 금융상품 사전인증·사후검증 강화 필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열풍을 지나 광풍으로까지 치달으며 'ESG 버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ESG가 한때 스쳐가는 유행에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상장기업들의 ESG 공시 의무화와 법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SG 관련 금융상품에 대한 사전인증과 사후검증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ESG 공시, 말레이시아·인도보다 낮아 =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과 금융기관의 친환경 전환 및 그린워싱(친환경 위장) 위험 방지 방안으로 'ESG 공시강화'가 주목받고 있다. 비재무적 성과지표인 ESG는 이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가 됐다. 투자자들의 ESG 관련 기회와 리스크 정보 요구가 높아지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공시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도 시작됐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0일부터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투자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지속가능금융공시 제도(SFDR)'를 시행하고 있다. 2018년 근로자 수 500인 이상의 역내 기업에 ESG 공시 의무화에 이은 조치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에 투자한 유럽 자본의 ESG 정보공개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이미 지난해 한국 주요 기업을 포함한 전세계 피투자기업 CEO(최고경영자)에게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기준에 맞는 정보공시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ESG 공시 수준은 아직 저조하다. 삼정KPMG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ESG 공시 보고서 발간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지난해 국가별 매출 100대 기업의 비재무보고서 발간율이 높은 나라(90% 이상)는 14개국에 달한다. 특히 일본과 멕시코의 매출 100대 기업은 모두 비재무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의 비재무보고서 발간율은 98%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 같이 7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정남 삼정KPMG 상무는 "우리나라의 ESG 공시 의무화는 2025년 이후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며 "ESG 정보공시의 중요성은 기업 및 정보이용자로부터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대에 뒤쳐진 금융당국" =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기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ESG공시 의무화는 아직 결정 된 바 없다. 금융위는 "기업들의 ESG정보공개가 초기단계임을 감안해 거래소 자율공시를 우선 활성화하고,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우리나라의 ESG 정보공개 의무화 시기가 너무 늦다는 지적과 함께 의무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위기 대응과 저탄소·친환경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ESG 공시 의무화 시기는 너무 늦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전체 코스피 상장사 기업지배구조 보고 의무화는 2026년으로 미룬 점은 시대에 뒤처진 모습이라는 비판이다.

이유진 국무총리 그린뉴딜 특별보좌관(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9일 국내 112개 금융기관이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금융 실행 6대 약속을 하며 △금융 비즈니스 전반에 기후 리스크 및 ESG 요소를 적극 통합하고 △기후변화 관련 국제 기준 정보공개지지 및 재무정보 공개 노력 △대상기업 기후변화 및 ESG 정보 공개요구 등을 발표했다"며 "이런 상황에 ESG의무 공시를 2030년으로 계획한 것은 시대에 뒤처진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ESG 열풍이 홍보나 유행으로 끝나면 안되고 그린워싱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며 "금융위원회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체계에 녹색금융 제도화 반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SG는 공시가 핵심" = ESG등급체계 일원화와 ESG 기초정보를 비롯한 ESG 관련내용에 대한 공시의무 강화 및 공시 접근성 강화를 추진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성철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ESG는 공시가 핵심"이라며 "공시강화 및 ESG 정보의 접근 용이성을 위한 일원화된 공시체계를 확립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신용평가사들이 ESG 채권 인증에 등급을 부여하는 목적은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건강한 ESG 채권 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후 검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발행 당시 최고 등급을 받았어도 1년 이후에도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에 권 연구위원은 "ESG 등급과 관련한 인허가와 감독 등 관리체계 법규에 ESG 등급에 대한 인허가요건을 명시하고 인허가를 획득한 기관에 대해서는 현행 신용평가사에 준하는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운영과 감독을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ESG 평가는 해당 ESG 전문평가사 홈페이지에, 나머지 ESG 요소 이슈와 ESG 사전검증 사후검증 등의 내용은 금감원 전자공시로 일원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ESG 채권발행과 관련해서는 발행사와 투자자에게 강력한 혜택을 주는 방향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주요 국가들이 채택해 사용하고 있는 국제적회계기준(IFRS)을 제정·배포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올해 상반기 중에 새로운 ESG 회계 표준을 제정할 계획이다. 회계 기준으로 ESG가 반영된다면 이는 더 이상 기업에게 하는 권고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게 된다.

["ESG 그린워싱 막아라"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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