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전체 규모, 지난해 절반 수준

시민단체 등 의원소개 청원에 주력

유권자 입법 접근 완화 취지 사라져

"낮아진 효능감에 참여 저하" 지적

도입한 지 1년여 만에 전자입법청원인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의원과 국민들로부터 모두 외면 받으면서 '유명무실'의 위기에 놓였다. 올해 들어 단 한 건의 국민동의청원도 10만 명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동의를 받기 위해 올라온 청원도 줄었다. 이는 국민들이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다른 모습으로 국회가 국민들과 괴리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1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시작한 국민동의청원으로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에 올라온 청원이 18건이었다. 이중 5건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5건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 폐기됐다. 8건은 상임위에 계류돼 있으며 일부는 상정도 안됐다.

의사봉 두드리는 조승래 소위원장 | 조승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원자력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원자력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20대 국회였던 지난해 1~5월 사이에 국민동의청원으로 7건이 접수됐고 나머지 11건은 21대국회 6~12월에 들어왔다. 올해 들어서는 단 한 건도 상임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국민동의청원으로 접수됐지만 '30일내 10만 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청원은 189건이었다.

'10만 명 기준'을 넘어서지 못한 비율이 91.3%에 달한다. 8.7%만 상임위에서 논의될 권한을 얻게 된 셈이다.


◆ 점점 줄어드는 국민동의청원 접수 = 30일내에 100명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공개된 국민동의청원이 207건이었다.

월별 공개(접수) 추이를 보면 제도 도입 초반에는 상당한 참여도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5건, 2월 9건에서 3월에는 무려 52건이 올라왔다.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4월에 26건으로 반토막나더니 5월~11월엔 월평균 11건 정도로 겨우 두자릿수를 지켜냈다. 12월엔 9건이었고 올해들어 1월 6건, 2월 8건, 3월 7건 등 한자리수로 내려앉았다. 이달에도 20일간 3건만이 국민동의를 받기 위해 인터넷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1~4월까지 공개된 국민동의청원은 2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2건과 비교하면 73.9%나 감소한 셈이다.


◆ 전반적인 청원 감소세 뚜렷 =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는 방식(의원소개)과 전자청원 방식(국민동의청원)을 모두 합한 청원수는 21대 들어 이달 20일 현재 37건이다. 지난 20대 같은 기간에 들어온 청원 77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4년 임기의 국회별로 같은 기간 현황을 비교해보면 16대에 222건에서 17대엔 157건, 18대엔 76건으로 내려앉았고 19대엔 66건이었다.

청원 전체 건수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후 13대(503건), 14대(534건), 15대(595건)까지 꾸준히 500건대를 이어오다가 2000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16대에는 765건까지 상승했으며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17대에 432건으로 급격하게 떨어졌고 18대 272건, 19대 227건이었다. 20대엔 207건에 그쳤다.

최근들어 완만하게 줄어들었던 청원이 21대 국회 들어 감소폭이 가팔라진 게 눈에 띈다.

◆ 시민단체, 국회의원 소개로 청원 나서 =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민들의 발안권을 보장하고 입법에 참여토록 하려는 의도가 크게 엇나가는 분위기다.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저조해졌고 이에 따라 올해 들어서는 의원소개만 10건이 들어왔다. 21대 들어서 26건은 의원소개 청원이었고 국민동의청원은 11개에 그쳤다.

의원소개 청원은 주로 시민단체들이 의원과 손잡고 제안한 게 많았다.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국민동의청원을 시도했던 시민단체들이 상대적으로 더 간편한 의원소개로 돌아서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바른사회운동연합, 참여연대, 전국국공립대 인문학장 협의회, 치악산 국립공원 지역 주민연합회 등이 국민동의청원이 아닌 의원소개를 선택했다.

참여연대는 '시민의 열정, 국회의 무관심' 칼럼을 통해 "시민들이 사회적 중요의제에 대해 국회를 대상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시의성 있고 책임있는 반응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지난 국회에서 소개의원 청원 실태에서 폐기 건수가 증가할수록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 건수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동의청원을 하더라도 반응이 없거나,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판단이 형성되어 버리면 효능감이 낮아지고 낮아진 효능감은 참여저하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 국회불신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의 '국민동의청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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