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다양한 형태 이주마을 추진

의료·복지·문화 기반시설 확충 관건

세대공존·주민교류 성패 가를 요소

지역 소멸위기를 극복할 해법 중 하나로 은퇴자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들이 앞 다퉈 은퇴자마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새로운 형태의 마을 조성 방안을 찾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은퇴자마을이 성공하려면 도시 수준의 의료·복지 기반시설을 갖춰야 하고, 다양한 세대·주민 공존 정책도 필요한 만큼 인구소멸지역을 되살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7일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등에 따르면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들이 치열한 은퇴자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래 없는 저출생과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자체들이 은퇴자들을 불러들여 지역에 활력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도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료·문화·복지 서비스를 마련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이들 지자체들의 판단이다. 또한 이 같은 기반시설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미 국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은퇴자마을이 있다. 충남 서천 어메니티복지마을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2005년 추진한 농어촌 복합노인단지 시범사업으로 조성됐다. 2008년 개관했으며, 노인전용 아파트 107세대에 전국에서 찾아온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단지 내에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함께 있다. 노인·장애인 복지시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주민 이용율의 80%나 된다. 지역사회와 격리돼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북 고창의 서울시니어스타워는 병원재단이 운영해 의료서비스에 강점을 갖고 있다. 골프장과 온천 숙박시설 등 수익기반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노인복지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온천을 개발한 덕분에 외부 관광객 유치까지 가능해졌다. 고창 시니어스타워는 독일 대표 휴양도시 바트뵈리스호펜과 닮았다. 뵈리스호펜은 과거 주민들이 목축업 등에 종사하며 생활하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1889년 세바스티안 크나이프(1821~1897년) 신부가 자신이 주창한 크나이프요법(물 운동 허브식물 등을 활용한 자연치료의 한 방법)을 이용한 치료시설을 마련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이후 치료 목적의 호텔·펜션 등이 들어서고 1920년 온천까지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치료·요양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치료 목적의 호텔이 142곳, 침상 수가 5000개가 넘는 노인들의 도시, 휴양의 도시가 됐다.

조선대가 추진 중인 대학 기반 은퇴자마을도 눈에 띈다. 조선대는 최근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UBRC)’ 추진을 위해 법무법인 대륙아주, 부산 동명대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UBRC는 미국의 스탠퍼드대 등 100여개 대학 캠퍼스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은퇴자 주거·교육시설이다. 전통적인 노인 주거단지 기능과 다양한 교육과정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은퇴자마을인 셈이다. 대학에 의과대와 대학병원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미국 하버드대가 운영하고 있는 ‘뉴브리지온더찰스(New Bridge on the Charles)’의 경우가 이와 유사하다. 대학병원과 연계해 입주자들에게 돌봄과 진료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고, 단지 내에 초등학교를 개교해 노인-학생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대학생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다세대 공존 주거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캄풍 애드미럴티’도 국내 유사사례는 없지만 눈여겨볼만한 형태의 은퇴자마을이다.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10여개 아파트단지 한가운데에 실버타운을 조성하고, 신혼부부 부모에게 입주 우선권을 부여했다. 또 유치원과 노인센터를 한 건물에 배치해 맞벌이 부부의 어린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노부모가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3대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은퇴자마을인 셈이다.

최근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강원 삼척에 추진 중인 ‘골드시티’는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사업이다. 서울에 주택을 보유한 은퇴자 등에게 생활비와 지방 신규주택을 공급하고, 대신 기존 주택은 SH가 매입하거나 임대해 청년·신혼부부에게 재공급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행안부는 SH가 강원지역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했다.

충북 괴산에 2009년 조성된 ‘미루마을’은 대학 동문 공동체 마을이다. 인하대 동문 50여 가구가 귀촌을 목표로 조성했다. 특히 이 마을에 들어선 숲속작은책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책방은 괴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봐야 할 곳이 됐다. 미루마을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자 괴산군은 인근에 또 다른 은퇴자마을인 성산별빛마을을 조성 중이다. 임대형과 분양형 타운하우스 각각 20가구와 단독주택 15필지를 포함한 은퇴자·귀촌마을이다. 차로 3분 거리에 수영장 영화관 등을 갖춘 자연드림파크가 들어서 추진할 수 있었던 사업이다.

정부도 인구소멸 위기지역 지원방안 중 하나로 은퇴자마을 조성을 지원하고 나섰다. 행안부는 지난달부터 은퇴자마을 조성을 포함해 두 지역 살이, 로컬유학, 로컬벤처, 워케이션 등 다양한 유형의 ‘고향올래’ 사업을 공모 중이다. 또한 국내외 다양한 은퇴자마을 사례를 분석해 은퇴자들이 청년 학생 등 다양한 세대와 공존할 수 있는 이주마을 조성에도 나선다.

행안부 관계자는 “2025년이면 노령인구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드는데 이들 노인세대가 다양한 은퇴자마을에서 세대 간 교류를 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또한 소멸위기에 놓인 인구감소지역 지자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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