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대상자 10명 중 8명 아예 오지 않아

면접 때 슬리퍼 신고 오거나 짜증내기도

기업은 채용 안 하고 청년은 지원 안 하고

"창업·경영 해 본 사람이 정책 내놔야 효과"

26일 오후, 바람이 다소 가로수를 강하게 흔들어댔지만 한껏 강해진 햇볕에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이마트를 지나 벤처빌딩의 숲으로 들어갔다. 한신IT타워에도 벤처 도전자들의 '성공의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12층에 있는 아이리시스는 독보적인 생채인식기술을 가지고 있는 창업 10년차 벤처기업이다.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최근엔 증자도 단행했다. 한승은 대표(사진)는 사업 확장을 위한 인수합병(M&A)을 진행하느라 바쁜 듯 보였다. 대표실에서 가진 1시간 30여분간의 인터뷰에서 한 대표는 우리나라 벤처기업 생태계에 대한 애정과 쓴 소리를 뒤섞어 쏟아냈다. 그가 내놓은 창업과 2030세대 고용에 대한 조언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였다.

사진 이의종

■우리나라 벤처생태계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52점이다. 벤처 기업은 원시림이다. 신기술이 개발되고 핫한 아이템이 나오면 벌떼처럼 몰려든다. 비슷한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서로 물어뜯는 시장으로 전락한다. 이런 게 반복된다. 핵심인재들이 경쟁하는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몸값만 오른다. 개인에겐 좋은 시나리오지만 기업과 정부엔 소모적이다.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벤처생태계 질서를 정리한다는 것인가.

창업생태계 시스템은 잘 돼 있다. 각 대학에 창업보육센터가 있고 대기업이나 지자체에도 있다. 지자체 혁신센터가 서로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붙인다. 이 회사, 저 회사가 비슷한 연구(예를 들면 생체인식)를 한다고 하면 이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기술에 달라붙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같이 협쳐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나서면 관치 논란이 있지 않겠나.

같은 시장을 놓고 같이 싸우면 서로 부딪힌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잘 안다. 기업들이 두려운 것은 자금조달 문제다. 정부가 R&D비용을 지원해주고 합해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런 방식이다. 이스라엘은 강한 IT벤처 육성 플랫폼을 갖고 있다.

■정부에서는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반대로 (정책당국자에게) 질문해보고 싶다. 당신은 창업을 해봤나. 자신도 못 가 본 길을 왜 청년에게 하라고 하나. 구조적 시스템이 잘못됐다. 무책임하다. 창업해서 실패하면 신불자(신용불량자)다. 재기가 어렵다. 창업을 독려하고 끌고 가는 것은 맞다. 그러면 이걸 누가 해야 하나. 실제 창업해서 키우거나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축으로 창업정책을 끌고 굴려가야 한다. 창업멘토 기업인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기업에 들어가 옆에서 보면서 회사 경영과 운영에 대해 견습, 인턴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것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디어 만으로는 안된다.

■창업 지원 시스템이 탁상공론이란 뜻인가.

제가 서울시 창업지원센터 출신이다. 5대 1을 뚫고 들어갔다. 같이 들어간 동기가 50개 기업정도 된다. 들어가자마자 담당센터장이 50명 중 상장까지 가는 사람은 평균 1명이라고 했다.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안 망하는지, 성공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창업은 어려운 과정이다. 멘토시스템을 기업인 출신으로 바꿔야 한다. 후배를 양성하고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기계약해 지원해주게 해야 한다. 이런 기업이 멘토로 나서면 세제혜택을 주거나 고용창출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혁신센터의 경우 KT SK 등 대기업들이 지역별로 맡아 돈을 댔다. 누가 돈을 달라고 했나. 실제 중요한 것은 노하우다.

■구인은 어떠한가.

채용공고만 6개월째 올리고 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보는 게 지원자가 얼마나 들어왔냐다. 하루에 2~3명밖에 안 들어온다. 점점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왜 지원을 안 할까 생각해봤다. 첫 번째 이유는 의심이다.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여기서 일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가상화폐 등 조금 넣고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이 낫지 않을까' 등이다. 면접을 해보면 일할 의지가 안 보인다. 어떤 친구는 슬리퍼 신고 면접보러 왔다. 복장이 문제가 되냐고 하더라. 어떤 지원자는 짜증을 냈다. 구직공고를 올리려면 연봉 근무시간 성과급 복지 등을 구체적으로 올려야 하지 않냐는 거다. 아르바이트 구하는 정도의 느낌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취업 의지가 없다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너무 벌어졌다. 4년제 대학 나오면 초봉이 연 3500만~4000만원선이다. 4대 보험 제하면 월 300만원정도 가져간다. 여기서 휴대폰 요금 등을 빼면 실제 가용자금은 200만원정도다. 어떤 친구는 월세를 내고 학자금 대출 원리금도 갚아나가야 한다. 사회적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낀다. 취업을 하면 이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만한 월급을 받아야 한다. 10명에게 면접하러 오라고 하면 8명은 안 온다. 전화를 안 받는다. 이유가 뭔지 알아보니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면접 보면 면접수당을 준다는 거다. 2~3개 골라 면접을 보고 건당 10만원씩 받는 거다. 그러면 한달에 80만원정도 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이 된다. 그냥 사는 거다. 집 가까운 곳 골라 면접 보러 가서 사인받고 사는 거다. 다급함이 없다.

■왜 절박함이 없다고 생각하나

과거에는 배고팠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현재는 잘해봤자 현상유지다.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청년 직원들은 30대 초중반인데도 명품을 많이 알고 많이 갖고 다닌다. '돈 모아서 집을 사야지'라고 하면 '집을 살 수가 없다', '이번달 벌어서 이번달 잘 살래요'다. '만족하면 되지'다.

■일자리도 줄어들지 않나.

경쟁자 중엔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국인인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우리나라 들어와서 또 졸업한 사람들이 취업비자로 입사지원서를 낸다. 오늘도 이력서 보니 8명 중 1명 빼고 나머지는 중국인들이다. 우리나라 청년들과 경쟁관계에 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유는 뭔가.

(중소)기업들이 채용할 유인이 없다. 구조적인 흐름이 이상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코로나이슈를 지나면서 시스템의 부품화, 전문화, 분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마케팅 등 전문기업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사내에서 하던 마케팅, 홍보 등을 모두 이 전문기업에 맡긴다. 훨씬 효율적이다. 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인재 양성도 어려워진다. 또 그 전문기업들은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로 짜여져 있어 외부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고용유지하면 지원하는 정부 지원책은 어떠한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직원의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고용유지지원금 받겠다고 하면 하루에 6만9000원 준다. 월급은 하루 평균 50만원으로 계산해 줘야 하는데. 또 지원금 받는 날은 휴직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모두 빼고 지원해준다. 기업은 고용유지지원금 규정에 따라 집에서 쉬라고 하고 모든 유급 휴일까지 계산해서 임금 그대로 줘야 한다. 한달에 140만원 지원받고 800만~9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기업은 또 4대 보험을 내야 한다. 그게 200만원이다. 고용유지하면 회사에 손해다. 그러니 구조조정하는 거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소진되지 않은 이유다.

■기업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청년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나.

웬만한 기업들이 신입 인력을 거의 채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입교육 10명하면 1~2명 남는데 투자할 의지가 있겠나. 신입을 잘 안 뽑으니 경력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경력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 중소기업의 경우 6개월이나 길면 2년정도 의무채용할 테니 정부에서 인건비의 50%이상을 보상하는 것이다. 인턴제와 같은 거다. 갑자기 스스로 그만두는 것은 본인 의지다. 그럴 경우 재교육 기관으로 보내고 교육을 받으면 생활비용 등을 지원해 줘라. 인턴 기간 중엔 해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서로간의 탐색기간이어야 한다.

■적성과 상관없이 대학에 지원하고 졸업하지 않나.

1년 근무가 끝나면 기업이 13개월어치 월급을 주고 정부도 지원하는 것은 어떠한가. 생애최초주택자에게 지원하는 것처럼 첫 직장을 잡을때도 혜택을 주는 것이다. 6개월, 1년, 2년 약정 걸어서 하면 좋겠다. 그러면 미래가 생긴다. 경력 쌓게 하는 것은 기업만이 할 수 있다. 창업도 그렇게 경험을 쌓아야 한다. 비전이 보이면 일을 한다.

■적성을 찾는 탐색의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인가.

청년세대는 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어려운 것을 모르고 살았다.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다. 삼성 LG 이후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안보인다. 자원도 없다. 심각한 상황이 예상된다. 적성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청년들은 중소기업에서의 자기 소질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기업들은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정부에 필요한 게 뭔가.

경제관련 책임자는 실무 경험자로 뽑아라. 대학교수 이론으로 사업하면 망한다.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주식 백지신탁하고 그만둔 뒤에 2~3년 못 돌아가게 하더라도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에 하려는 사람이 나설 것이다. 필드에서 실제 해 본 사람은 금세 정책 효과를 크로스 체크할 수 있다. 현장경험이 있는 관리자가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다. 경제는 자동차 기름이다. 멋진 자동차를 서로 운전하려고 해봤자 굴러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국가경제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2030세대를 말하다"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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