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기에 고강도 메스 들이대야 … 평가에 관대한 채권은행 변화 필요

코로나19 이후 침체됐던 세계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미국은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를 본격화하고 기준금리 인상을 2023년으로 앞당길 예정이다.

코로나 사태로 시장에 풀렸던 자금들이 회수되고 대폭 완화됐던 금융규제가 원상회복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금융지원으로 버티던 한계기업들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무역수지 흑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급격히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며 "지금이 한계기업을 구조조정하기에 가장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은 경제 상황이 좋을 때 하는 게 맞지만 버티는 기업들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불황 때는 대상 기업이 크게 늘어나서 메스를 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은 경제가 코로나19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K양극화가 드러나고, 부실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위한 고강도 메스를 들이댈 적기로 볼 수 있다.


◆재무구조 취약한 중소기업 50% 넘어 = 금융당국은 7월부터 기업 신용위험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업의 상반기 실적을 평가에 고려할 수 있게 됐다. 경기 회복세를 반영, 상반기에 빠르게 회복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낼 수 있게 됐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분기별 재무제표 공시 기업 2520곳 중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은 1001개로 39.7%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영업손실이 발생해 이자보상배율이 0미만인 기업을 중심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금융(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미만이면 재무구조가 부실한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번조사에서 중소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2016년 38.8%에서 2017년 40.7%로 40%대를 넘어선 이후 2018년 44.2%, 2019년 47%, 2020년 50.9%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금융완화 기조에 따른 차입 비용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취약기업 비중이 상승했다"며 "취약기업의 취약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기업의 경우 취약상태 지속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상기업으로 회복되는 비율이 크게 하락하고 부도로 전환되는 비율이 상승했다.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상태가 1년차인 경우 정상회복비율은 37.6%이지만 8년차가 되면 12.6%로 하락했다. 부도 발생 비율도 1년차는 4.1%에 그쳤지만 7년차는 13.6%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장기존속 취약기업은 영업손실 규모가 확대되고 단기 유동성 및 장기 지급능력이 모두 악화되면서 자산 및 자기자본이 동시에 감소하는 등 기업활동이 점차 위축된다"고 밝혔다.

◆첫 단추는 '부실징후 기업 가려내기' = 한국은행을 비롯해 각종 통계를 보면 한계기업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들이 언제까지 버틸지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코로나 사태로 금융권이 원금 만기연장과 이자 상환유예 조치가 단행됐고, 기업의 금융부담은 줄었다. 여기에 정책금융의 지원도 이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의 18%가 정책자금지원(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온랜딩, 금융중개지원 대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중소기업 정책금융 규모가 한계기업 퇴출을 지연시키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대출로 연명하고 있는 한계기업들은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지원과 정책금융 혜택이 종료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에도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이 필요한 기업을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

금융안정보고서는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일시적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장기화될 경우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소지가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고, 기업 지원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의 채무상환능력 및 회생 가능성에 대한 정교한 평가체계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달라지는 '부실기업 평가방식' 올해 구조조정 기업 늘까 =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가려내는 첫 단계는 금융감독원과 채권은행이 진행하는 신용위험평가다.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을 상대로 진행되는 평가는 기업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A등급은 정상적 영업이 가능한 기업이고 B등급은 부실징후기업이 될 가능성이 큰 기업이다. 문제는 C와 D등급이다. 둘 다 부실징후기업이지만 C는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기업, D은 가능성이 낮은 기업이다. 통상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원의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그동안 신용위험평가는 주로 기업의 재무위험과 영업현금흐름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됐다. 하지만 금감원은 재무위험만으로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고 올해부터 기업의 사업위험에 중심을 두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평가를 진행하는 채권은행들은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하는 기업을 굳이 나쁘게 평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재무위험뿐만 사업위험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워크아웃 기업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업이 잘 될 때 설비 투자를 많이 했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금융비용이 크게 발생하는 등 사업위험이 기업 부실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채권은행들은 계량화 지표인 재무위험과 영업현금흐름에서 평가가 좋지 못한 기업의 경우, 사업위험 부문을 관대하게 평가해 부실징후기업을 선별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사업위험은 크게 산업위험과 영업위험, 경영위험으로 나뉜다. 산업위험은 업종별 향후 3년간 경기변동 민감도, 성장 전망 등을 포함하고, 영업위험은 시장지위, 시장점유율, 업계순위 등을 반영한다. 경영위험은 소유·지배구조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여부 등으로 계량화가 힘든 영역이다. 금감원은 올해 기업의 사업위험 평가에 집중하고, 계량화 작업도 진행해 내년 신용위험평가부터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실징후기업을 선정하는 이유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며 부실징후 기업은 하루빨리 회생절차에 들어가서 채무동결이나 워크아웃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야한다"며 "채권은행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기업 신용위험평가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구조조정 대비하자"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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