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언론인 경기대 교수

독일 공영방송인 'ARD'가 '16년 간 독일을 이끌어 온 앙겔라 메르켈이 좋은 총리인가, 아닌가?'를 8월 첫주 독일 국민 1312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 75%가 '좋은 총리'로, 20%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절대 다수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조사결과 유권자들은 메르켈의 '실력'(78%)을 가장 높게 평가했고, 이어 강한 리더십(77%), 신뢰(71%)를 꼽았다"고 보도했다.

후임자로 거론되는 기민당(CDU) 아르민 라세트, 녹색당(Die Grunen) 아난넬라 베어복, 사민당(SPD) 올라프 숄츠의 지지도는 20%대다. 벌써 메르켈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메르켈리즘' 용어까지 등장했다. 겸손, 신중하면서도 유연하고 실용적인 외교로 미국과 러시아를 상대해 국익을 챙기는 리더십을 말한다.

다음달 9월 26일 독일 총선이 실시된다. 의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연합 정당이 총리를 뽑는다. 유럽·독일 언론들은 메르켈 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독일 보수 성향의 고급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최근 수백명 목숨을 앗아간 홍수에 빗대 '메르켈은 침몰하는 나라를 남기고 떠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뽑았다. 스위스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은 그의 시대가 '황금기'로 '새 정치문화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메르켈 리더십 그리워하는 목소리 커져

헬무트 콜 총리와 함께 16년이라는 최장수 총리로 재직한 메르켈의 공과(功過)를 분석해봤다.

먼저, 실력과 실적이다. 2005년 총리 취임 당시 독일은 과다복지로 '유럽의 환자'였으나 현재 유럽최강국이다. 당시 독일은 11%의 높은 실업률로, 전후 최다인 500만명 이상이 일자리가 없어 신음하는 사회였으나 현재는 3.3% 실업률로 완전고용의 나라다. 청년실업 역시 당시 10%대에서 현재 4%대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한국 청년실업은 현재 3배 높은 11%대에 육박했다.

또한 2005년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2조8460억달러(약 3271조원)에서 지난해 3조3780억달러(약 3883조원)로, 1인당 GDP는 3만4500달러에서 4만6500달러로 성장했다. 출산율은 1.34명에서 1.57명으로, 국가청렴도는 16위에서 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2011년 최초로 새 국가비전인 '인더스트리 4.0'(4차산업혁명) 그랜드 플랜을 제시했다. 공영방송 'ZDF' 등은 '이보다 더 행복하고 번영한 시절이 없다'고 노래한다.

둘째, '위기에 강한 리더십'이다. 2008년 유럽 재정위기 때 그리스 좌파정권은 공무원 과다증원, 대학 무상교육, 무료 대중교통 같은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리스는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리스 언론과 과격파들은 "나치의 피가 흐르는 메르켈은 그리스 문제에서 손떼라"고 외쳤다. 메르켈이 'EU 재정균형 원칙'을 세워 그리스에게 허리끈을 졸라매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까지 메르켈 정책을 비판했으나 곧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벌거벗은 포퓰리즘', 즉 타깃계층에 영합하는 과잉 퍼주기를 통해 집권한 나치의 나쁜 역사를 경험한 것이 교훈이 됐다.

이어 메르켈은 2010년 금융위기,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2015년 난민위기, 코로나 펜데믹 및 홍수위기 등을 거치면서 위기에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본대학 울리히 쉴리 교수는 "(그가) 위기라는 어둠의 길에 빛을 비춘다"면서 '위기해결사'라고 칭한다. 글로벌 리더인 그를 '타임'은 '올해의 인물'(2015년)로 선정했다.

셋째, '신뢰'의 리더다. 독일 자유베를린대 김상국 교수(정치학)는 "메르켈의 가장 큰 장점은 재임 16년 동안 단 한건의 스캔들도 없었다"고 '품격의 정치'를 말한다.

메르켈은 세금을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총리 이전부터 살던 아파트에서 16년 동안 출퇴근했다. 수도세와 전기세를 자신과 남편이 나눠 냈고, 요리사도 두지 않았다. 주말이면 보통시민과 함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한다. 국내외 언론들이 메르켈과 인터뷰할 때 "항상 같은 옷만 입는다"고 질문을 던지면 그는 "모델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우리처럼 특활비도 없다. 청렴한 생활을 솔선수범한다.

나아가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용기 있는 리더다. "헬무트 콜 총리는 기민당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제 콜 시대를 끝내고 미래로 가자." 이는 1999년 메르켈이 기민당 사무총장 시절 '정치적 대부'인 콜 총리가 정치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이자 탯줄을 끊어버리는 칼럼을 FAZ에 기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민당 일부 의원들은 '친부 살인자'라는 용어까지 쓰면서 맹비난했다. 다수 국민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리더"로 지지했다.

넷째, 성평등사회 추구다. 최초의 독일 여성총리로서 성평등사회로 가는 데 앞장섰다. 메르켈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말하면서 '여성할당제'에 적극적이었다. 독일 의회는 이미 의원 30% 이상 여성할당을 법제화했다. 최근 상장기업과 2000명 이상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에 1/3 이상, 감사위원회에 30% 이상 여성을 임명해야 하는 '제2 여성할당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상장·대기업 여성임원 비율은 14%지만 법 통과로 2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또한 그는 사민당과 3번 대연정을 이루는 등 정파와 지역을 떠나 통 크게 포용하는 통합 및 민주합의제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무티'(엄마)의 리더십이다. 녹색당·사민당의 중심 의제인 '탈핵'과 '모병제'를 수용했다.

다섯째, 소통의 리더다. 16년 총리 재임기간 동안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던 연방기자협회 마지막 회견장에서 "항상 즐겁고, 좋은 '근본기분'(Grundstimmung)으로 여기 온다"고 말했다. 근본기분은 독일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사용한 개념으로 '유지냐 변화냐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는 기분'이다. 강력한 문제 극복의지를 말한다. 그는 1년에 평균 52번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국민 알권리에 충실하다. "퇴임 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마지막 기자 질문에 "푹 자고, 책 읽고, 어느 시점에서 새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메르켈 같은 지도자 만날 때 됐다

물론 메르켈이 남긴 짙은 그림자도 있다. 목사 딸인 그는 인도적 차원에서 2015년 시리아 100만 난민을 받아들였다. 그 정치적 후유증으로 신나치 독일대안당(AFD)이 부상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홍수·산불 등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책도 미약했다.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을 뽑는다. 위대한 우리 국민도 이제 청년실업, 성평등 등 근본문제를 해결할 청렴하고 품격 있는 메르켈 같은 지도자를 만날 때가 되었다. 그와 견줄 수 있는 우리 대선 후보는 누구인가?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