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언론인 / 경기대 교수

9월 26일 독일 총선에서 중도좌파 사민당(SPD)이 근소한 차이로 1위(25.7%)를 차지했다. 이어 중도우파 기민·기사당(CDU·CSU) 연합이 24.1% 얻었다. 3위는 동맹90·녹색당이 14.8%, 이어 자민당이 11.5% 득표했다. 극우 독일대안당이 10.3%, 좌파당이 턱걸이(4.9%)로 지역구 3석을 얻어 의회에 입성했다.

독일 총선 민심을 크게 3가지 트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비리·스캔들을 일으킨 정당이나 후보는 가차없이 심판받았다. 메르켈 총리 소속의 기민당 의원 2명이 중국과 독일 마스크업체 돈을 받고 수입을 도와준 것이 드러나 탈당했다. 총리후보 라셰트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수 현장에서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TV에 중계돼 물의를 빚었다. 녹색당 안나렐라 베어복 대표는 유력한 총리 후보로 부상했으나 경력 채색과 자서전 표절 문제로 추락했다.

둘째, 세대교체다. 전체 의원 3명 중 1명이 40대 이하의 MZ세대다. 독일 연방의원 평균 연령은 47.5세로 낮아졌다. 최연소 의원은 녹색당 에밀라 페스터(23살)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8세다.

또한 이민자 출신이나 자녀들이 대거 당선됐다. 한국계 2세 이예원(34세)도 사민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독일 20대 유권자 44%가 거대 정당(기민당·사민당)보다 진보·중도(녹색당·자민당) 정당에 표를 던졌다.

셋째, 유권자들은 '회고적' 투표 대신 '미래 전망적' 투표 성향을 보였다. 메르켈 시대 16년 번영에 매몰되지 않았다. 새 시대에 걸맞은 비전과 공약을 보고 투표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환경위기 극복을 위한 비전과 이슈에 관심이 높았다. 또한 극좌우 포퓰리즘 선동 선전은 먹혀들지 않았다.

환경·조세에선 차이, 디지털은 한목소리

그럼 독일 유권자들은 어떤 이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고, 각 정당들은 어떤 슬로건과 공약을 제시했는가? 선거슬로건으로 기민당은 '안정과 쇄신', 사민당은 '당신의 미래 존경', 녹색당은 '독일에 모든 것이 가능', 자민당은 '더 많이 일해야', 좌파당은 '복지·평화·환경정의를 위한 행동', 대안당은 '독일 정상화'를 내걸었다.

연방의회에 입성한 6개 정당(사민당·기민당·녹색당·자민당·대안당·좌파당) 공약집에서 환경 디지털 주택 조세 교육 연금 노동 가족 건강의료 간병 이민·난민 외교안보의 12개 핵심이슈를 분석해봤다.

먼저 최악의 홍수와 산불 등으로 선거를 달군 환경 이슈다. 사민당 기민당 자민당은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녹색당과 좌파당은 더욱 속도를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녹색당은 철강 등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한 탄소거래세 강화를 제시했다. 반면 극우 독일대안당은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한다.

각 정당들은 모두 디지털 진전을 약속했다. 기민당은 연방정부에 '디지털부' 설립을, 사민당은 2025년까지 전국에 5G 건설을 내걸었다. 또한 초·중·고등학교에 초고속 인터넷망 설치도 약속했다. 좌파당은 통신·모바일 회사 공영화를 주문했다.

주택 이슈는 독일에서도 큰 관심이다. 우리처럼 주택난과 월세 급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당이 민간·공공주택 건설 활성화를 내걸었다. 사민당은 매년 40만호(10만호 공공임대주택 포함) 건설을, 기민당은 임기 4년 동안 150만호 건설을 내걸었다. 정당 간 차이는 사민당과 녹색당은 월세 상한제 및 지원제도 유지를, 기민당과 자민당은 폐지를 공약했다. 녹색당은 헌법에 주택기본권 제정을 제시했다.

조세 이슈도 정당 간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연대세 부유세 신설과 동시에 부자들 재산세 증액을 공약했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기민당과 자민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서민들에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투자에도 한목소리다. 구체적인 공약에서 차이가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모든 학생들에게 디지털 장비(노트북 등) 무상 지급을 내걸었다. 기민당은 유치원을 대거 확충해 조기교육을 받게 하고, 서민층인 '하르츠4' 대상자 가족에 100유로를 더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연금 정책도 비슷한 입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사민당은 연금금액을 기본급의 48%로 상향을, 녹색당은 조기 퇴직의 경우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반면 기민당과 자민당은 국가 재정을 고려해 67세부터 연금을 제안했다.

노동공약은 확연하게 차이가 드러났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최저임금을 12유로로 인상할 것을 공약했다. 이로 인해 1000만명이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기민당과 자민당은 노사자율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녹색당은 '최저 월급'으로 1200유로를 제시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구축된 독일에서도 건강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독일 의료보험은 공·민영 혼합으로 운영된다. 이에 대해 사민당은 모두 공영체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녹색당은 대마 합법화뿐만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안락사 공약도 내놨다.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간병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사민당은 질적으로 높은 간병을 위해 신규 간병 인력 10만명 채용과 처우개선을 공약했다. 또한 간병보험 법적 의무화를 제안했다. 기민당과 자민당은 현행 제도 유지를 주장했다.

모든 정당들은 가족과 어린이 지원에 한목소리를 냈다. 기민당은 '가족친화적' 환경을 위한 '주택 문제 해결' 공약을, 사민당과 녹색당은 비혼자 자녀에 대한 지원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유럽연합(EU) 통합과 산업 구조변화로 인해 이민국가로 변하고 있는 독일은 이민·난민 정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15년 메르켈정부가 시리아 등 중동난민 100만명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후유증을 겪은 만큼 기민당은 '질서 있는' 이민 수용을 주장했다. 반면 사민당과 녹색당은 보다 쉬운 시민권 획득과 이중국적 허용을 제시했다. 독일대안당은 이민을 반대한다.

외교안보 분야는 정당 간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권위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터키·중국 등의 인권문제를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좌우 극단의 독일대안당은 EU 탈퇴 및 유로화에서 마르크화로의 복귀를, 좌파당은 NATO 탈퇴를 내걸었다.

크리스마스 전 신호등 연정 구성 가능성

그럼 차기 총리는 누가 될 것이며, 차기 정부는 어떤 정당들로 연정을 구성할까?

윤곽이 드러났다. 적색+녹색+노란색인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의 '신호등 연정'이 시동에 들어갔다. 각 정당대표들이 예비 협상에 '애정'을 갖고 임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연정 참여 각 정당들이 대의원 회의에서 추인을 받으면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한다. 지난 메르켈 연정은 5개월 걸렸으나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내겠다는 각오다. 녹색당과 자민당 간 공약 편차가 크기 때문에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다. 총리 후보인 사민당 마르틴 숄츠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중재를 자신한다.

만약 연정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 흑색 녹색 노란색을 쓰는 기민기사당+녹색당+자민당의 '자메이카 연정'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 기민당 총리 후보 라셰트의 희망사항이다. '코끼리 결혼식'인 사민당과 기민당의 대연정도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 평가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