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른만큼 체감 이자부담 상승 … 신용위험지수는 석달 만에 3배 급증

코로나19로 인한 역대 최저금리의 유동성 팽창으로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가 급증했다.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인 통화긴축을 예고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리고 있다. 기준금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출금리는 가계와 기업, 특히 소상공인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저금리시대가 저무는 상황에서 각 경제주체의 금융상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새해 초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가계의 이자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실질소득이 하락하면 부채의 체감 부담은 더 크다. 여기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의 하락까지 겹치면 금융불균형은 지렛대를 상실하고 금융위기로 진전될 위험이 있다. 문제는 각종 지표가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한 가운데,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붙은 대출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대출금리는 이미 기준금리 1.75% 수준 = 한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과거 가계부채 관련 위기 사례를 보면, 위기 직전에 대출이 급증하다가 자산가격 버블 붕괴, 급격한 신용공급 위축 등 대내외 충격의 발생으로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금융위기가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같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위기로 바로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관련 지표들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계신용(대출+카드사용 등)은 1844조8933억원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1분기(1611조4498억원)에 비해 1년 반 만에 14.5%가 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20년 1분기까지 3년간 늘어난 18.6%에 버금가는 것으로 그만큼 빠른 속도로 가계대출이 늘었음을 보여준다.

대출이자 부담은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가 세 차례에 걸쳐 0.75%p 오르면서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연간 9조6000억원, 1인당 평균 48만3000원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실제 시중금리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부담도 더 빠르고 크게 느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달 14일 현재 3.57~5.07%로 지난해 8월(2.62~4.19%)에 비해 1%p 가까이 올랐다. 한은 계산법으로 보면 불과 5개월 새 1인당 연간 64만4000원, 총 12조8000억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실제로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의 금리수준별 비중을 보면 빠르게 고금리 비중이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3% 미만 금리가 전체의 63.5%로 압도적인 데 비해 3~4%(28.2%)와 4% 이상(8.3%)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11월에는 3% 미만 대출비중이 28.7%로 크게 줄고, 3~4%(53.8%)와 4% 이상(17.5%) 비중이 크게 늘었다. 특히 5% 이상도 6.8%나 차지해 기준금리가 1.75%였던 2018년 4분기의 3~4%(18.6%), 5% 이상(5.9%)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금리인상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가는 올해도 3% 수준 근접 = 소비자물가 상승도 부담이다. 소비자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줄어들고 같은 이자도 체감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기에 비해 3.7%로 올랐다고 밝혔다. 임금 등의 소득이 제자리라면 이자부담은 그만큼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가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전망치를 상회해 상당기간 3%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간으로도 2%대 중반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자산가격 하락도 현실화할 조짐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정체 또는 하락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지수는 178.94로 전달(180.36)에 비해 하락했다. 이 지수가 떨어진 것은 2020년 4월 이후 1년 7개월만이다.

실제 거래에서 하락세도 눈에 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매매 968건 가운데 50.6%가 직전 거래보다 떨어진 가격에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국토연구원은 전국 주택의 실거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금리 변수가 44.5%로 가장 높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은도 자산가격 하락을 가계부채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봤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산가격이 채권최고액(담보설정액) 이하로 하락하면 디레버리징 압력이 증가하면서 채무상환을 위해 가계는 자산을 헐값 매각하게 된다"며 "이에 따라 자산가격이 더욱 하락하는 부정적 가격효과도 발생할 수 있고, 금융과 경제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다만 같은 보고서에서 "현재로서는 주택가격 조정으로 인해 큰 폭의 디레버리징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대출금리 계속 오른다 = 이자부담의 증가는 결국 가계신용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내은행 가계대출 신용위험지수가 지난해 4분기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4분기 이 지수는 18로 전분기(6)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이 지수는 2020년 1분기까지 7 수준에 머물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고,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2분기(40)와 3분기(26)에 급등했다. 하지만 2020년 4분기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수치가 크게 떨어져 지난해 3분기까지 안정세를 보이다, 기준금리와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4분기에 위험지수가 급등했다.

한은은 신용위험지수의 급등과 관련 "코로나19 이후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 증가세가 연체율을 하락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출금리 상승, 금융지원 및 완화조치의 종료 등으로 채무자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대출금리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우선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한 두차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4일 금통위 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장과 물가의 현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등을 고려하면 지금도 (기준금리가 낮은)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한다"면서 "기준금리가 연 1.5%가 되더라도 긴축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시중은행은 14일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예금금리를 먼저 올렸다. 신한은행은 17일부터 정기예금과 적립식 예금 36종의 금리를 최대 0.4%p 인상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도 17일부터 예·적금 32종의 금리를 0.1~0.3%p 올린다고 했다. 시중은행의 수신금리 인상은 대출금리의 추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은행연합회는 이번주 시중은행의 조달금리를 나타내는 코픽스를 발표하고, 시중은행은 이를 기초로 다시 대출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무는 저금리시대, 부채의 늪 심각" 연재기사]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