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이래 497명 사망, 매년 10명꼴 … 2015·2017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지난 1월 1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한국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불허하면서 LNG운반선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이유로 꼽았다.
1972년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에 건설한 현대중공업이 지난 50년간 이룩한 성과와 함께 그 앞에 닥치고 있는 도전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다.
디지털전환과 탈탄소시대에 적응하고 생존할 과제도, 산업재해 극복과 인권경영의 과제도 해결해 가야 한다. 내일신문은 현대중공업 50년을 △기적의 50년 △산업재해 50년 △앞으로 50년으로 구성해 살펴본다.

사망 노동자 추모하는 현대중공업지부조합원들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1월 25일 울산조선소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서 묵념과 헌화하고 있다. 울산조선소에선 1월 24일 50대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현대중공업 노조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1월 24일 오후 5시 15분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2야드 가공소조립 공장에서 리모컨 크레인으로 적치작업 중이던 오 모씨(51)가 크레인과 지지부 사이에 협착돼 사망했다.

#. 4월 2일 토요일 오전 7시쯤 하청업체 노동자 김 모(53)씨가 현대중공업 조선소 패널2공장 3라인에서 취부작업(본용접을 위해 철판을 자르고 가용접하는 작업)을 하던 중 폭발사고로 숨졌다. 이 사고로 현대중공업은 울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사업장이 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년은 산업재해 5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2년 창립한 이래 현대중공업에서 497명(사고사망 450명, 과로사 등 4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매년 9.94명 꼴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지부장 조경근)가 집계가 시작된 1974년 7월부터 이달 27일까지 산재사망자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전수조사는 1974년부터 1991년까지는 회사 자료를 확인했으며, 1992년부터 2013년까지는 회사 자료와 노조 자료를 교차 검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2014년 이후로는 노조 자료를 모아 이뤄졌다.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계열 조선사 사고는 포함하지 않았다.

◆1970년대 2주마다 1명 사망 = 1970년대에는 5년 6개월 동안 무려 137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2주일마다 1명이 숨졌다. 1977년에는 32명이, 1978년에는 29명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산업의 낮은 기술력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물론, 노동자의 목숨으로 메웠다.

1980년대에는 113명(과로사 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1984년에만 24명이 숨졌다. 1981년부터 6년간은 매년 두자리수를 기록했다.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가 설립된 뒤로는 1994년까지 매년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노조가 산재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9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시기부터는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고사망이 별도로 집계되기 시작했다. 과로사·산재질환 등의 통계도 나타난다. 당시 원청(직영)노동자가 59명, 하청노동자가 19명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이 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시작됐다. 또 과로사 등으로 18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2000년대 '위험의 외주화' 현상 확산 = 2000년대에는 원청 31명, 하청 40명 등 7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21명의 노동자가 과로사 등으로 모두 9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원청노동자의 산재사망은 점차 준 반면 하청노동자의 사망이 늘어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확산됐다. 2007년에만 하청노동자 9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010년대에는 원청 11명, 하청 30명, 과로사 7명 등 48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2000년대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현장의 안전문제가 개선된 것이 아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불황으로 작업량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지부의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에도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돼 2014년에는 하청노동자만 9명이 숨졌다.

2020년대 들어 현재까지 원청노동자는 5명, 하청노동자는 6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1988년부터 이달 27일까지 사망사고 경위가 확인된 산재사고 207건의 산재사망사고를 유형별로 보면 '추락'이 6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압착·협착·끼임(56건), 과로(41건), 충돌(16건), 폭발·화재로 인한 화상·질식(14건), 감전사(5건), 유해물질 사고(2건), 익사·매몰(각 1건) 등 순이었다.

지부는 "동일유형의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사고가 발생한 공정, 작업장에 대해 예방조치를 소홀히 하고 안전강화보다 납기를 맞추기 위한 작업강행이 반복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탐욕, 역할 못하는 감독기관·사법부 책임 =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산재현황은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을 들어야했다.

현대중공업은 시민단체로부터 2017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2016년에 원청 4명, 하청 8명 등 12명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199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공동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통해 직전 해에 가장 많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발표한다.

기업 선정은 고용노동부의 직전 해 '중대재해 사고사망자 2명 이상 발생기업'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원청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기 위해 하청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까지 합산한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에도 제조업부문에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2022년 선정식에도 공동 5위에 올랐다.

27일 김병조 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중대재해가 반복돼도 여전히 안전예방보다 속도와 효율이라는 생산제일주의, 노동자의 생명은 언제나 이윤보다 뒷전인 기업의 탐욕,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사고를 낸 기업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감독기관과 사법부가 모두 중대재해의 책임자"라며 "산재예방활동에 노조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창립 50년"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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