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회장·노진율 사장 지휘

노조참여 없는 반쪽 활동 그쳐

28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참여와 활동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반쪽짜리 활동에 머물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권오갑 HD현대(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지난 4월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안전한 작업장 조성을 위해 앞으로 사장이 직접 현장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중대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각 사업장 단위로 구축한 안전관리 방안을 공유하고 강화된 안전관리 방침을 현장에 맞게 설계해 즉시 적용하기로 했다.

◆임원들 현장 안전활동 강화 = 노진율 현대중공업 안전통합경영실장(사장)도 "국내 최고 수준의 안전시설물을 구축하고 조직을 확보해 '안전 최우선' 경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1월 크레인 작업 중이던 오 모씨(51) 사망 이후 현대중공업에 작업중지명령이 떨어진 상태에서 최고안전책임자(CSO)에 선임됐다.

울산 현대중공업은 권 회장 지시 이후 이상균 대표이사 사장과 500여 임원·부서장이 현장 안전예방활동을 시작했다. 7월까지 생산 및 생산지원 부문 임원·부서장들은 매일 하루 4시간 이상, 설계 및 경영지원 부문 임원들도 하루 2시간 이상 생산현장에 상주하며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직접 찾아 개선하고, '안전 최우선' 경영에 대한 의지도 보여줘 작업자들 안전의식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안전기획팀 관계자는 27일 "지난주 임원 조찬회에서 현장안전활동 내용을 공유했고, 이 사장은 적극적으로 현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며 "안전에 대한 경영층의 의지나 분위기가 현장 작업자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3년간 3000억원을 투자하는 안전관리종합대책도 수립했다. 현대중공업도 전 작업자에게 '안전개선요구권'을 부여하고 안전조직개편, 안전시설투자 확대 등에 16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안전개선요구권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된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명칭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현장 안전을 위한 활동에서 회사와 노조는 여전히 평형선이다. 회사는 상대적으로 사고를 유발하는 작업자의 '불안전 행동' 개선에, 노조는 작업장의 '불안전 상태' 해소에 관심이 많다.

◆노조, 안전예산 3000억원 투명성 요구 = 김병조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현대중공업이 안전예산 3000억원을 투자해 중대재해를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안전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노조가 자료를 요구해도 안전예산의 행방은 알 수 없다"며 "안전 관련 예산 증액, 안전인원 배치, 작업환경평가 등 안전 예산심의에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노조 참여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안전관리최적화, 시설개선을 통한 안전관리 최적화는 모두 허구다. 낡은 현장 기계 설비를 안 바꾸면서 어떻게 사고가 안 날 수 있나"며 "안전에 대해 투자하겠다면, 정말 개선하려면 노조 이야기를 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전기획팀 관계자는 "현장 안전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구성한 '안전·생산 심의위원회'를 상반기에는 회사가 자체 운영했는데 차차 노조와도 얘기할 것"이라며 "노조가 참여를 요구하면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한 생산 가능한 체계' 요구도 = 회사측의 산업안전 활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전기준의 준수·감시 수준의 활동은 비용 때문에 안전조치를 외면하거나 안전기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활동이지만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은 이런 차원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산업안전보건 한 전문가는 "현대중공업 수준에서는 안전기준 준수·감시 수준을 넘어선 접근이 필요한데 지식과 도전정신의 부족으로 새로운 접근에 대해 소극적"이라며 "경영진은 사고예방을 위해 기여할 의지는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안전 실무진은 자신들이 알고있는 영역의 방법으로만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경영이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리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며 "현재 현대중공업 상황에서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생산과 별도의 안전이 아닌, 생산에서 안전한 생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안전조직에 쌓여있는 안전지식은 생산라인의 상식이 되도록 하고, 인원수보다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춰 생산라인에 조언을 하고, 사고예방을 위해 경영진의 판단을 보좌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창립 50년" 연재기사]

정연근 한남진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