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가 이미 불경기에 빠졌다는 연방준비은행의 진단이 나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지난달 28일 미국경제가 이미 올 상반기 실질적인 불경기(Recession)에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선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 불경기로 간주한다. 애틀랜타 연은은 올 1분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1.6%를 기록한 데 이어 2분기도 마이너스 1%로 후퇴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기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12개 연은 가운데 애틀랜타 연은은 GDP(국내총생산) 추이를 추적한다. 애틀랜타 연은은 3월 1일부터 6월 27일까지 미국경제의 2분기 성장률이 당초 0.3%일 것으로 추산했다가 지난달 28일 마이너스 1%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5월 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연방준비제도 제롬 파월 의장의 경제전망 관련 뉴스화면이 흐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애틀랜타 연은은 "5월 미국민 소비지출이 0.2% 증가했으나 물가인상을 반영할 경우 마이너스 0.4%로 올 들어 첫 감소를 기록했다는 연방정부 통계가 발표돼 2분기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에 그칠 것으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 3월(0.25%p)과 5월(0.50%p), 6월(0.75%p)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p 올린 상황을 고려해 2분기 역성장을 확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1분기 마이너스 1.6% 성장은 연방정부의 확정 발표치이지만 2분기 마이너스 1%는 추산치다. 따라서 GDP 통계가 나올 때까지 공식적으로 불경기는 아닌 상황이다.

물가 반영하면 올 들어 소비지출 첫 감소

애틀랜타 연은이 미국경제가 이미 불경기에 빠진 것으로 진단하게 된 주요인은 경제의 버팀목인 소비지출이 물가급등을 반영하면 실질적으로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올 들어 첫 감소가 된다.

미 연방 상무부는 지난달 30일 5월 소비지출이 0.2% 늘었다고 발표했다. 고물가와 고유가, 고금리 속에서도 아직은 소폭이나마 매달 증가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물가급등이 소비지출 상승세를 크게 웃돌았다. 물가인상을 반영한 5월 소비지출은 마이너스 0.4%로 올 들어 첫 감소했다. 미국민들이 아직 지갑을 닫지는 않았지만 씀씀이보다 물가가 더 크게 오르는 상황이다. 특히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다.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5월 6.3%로, 전달과 동일했다. 연율로는 4월과 5월의 물가지수가 동일해 더 악화되지 않은 것이지만 휘발유와 식품 가격은 전달 대비 0.6% 상승했다. PCE 물가지수 6.3% 상승은 연준의 물가 목표치 2%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좀체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경기 와도 금리 올려 물가 잡는다

미국경제가 사실상 불경기에 빠졌다 해도 연준은 광폭의 금리인상을 이어나갈 것임을 분명히했다.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최근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경제정책포럼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연속 금리인상에 따른 불경기를 감수할 것"이라고 단호히 밝혔다.

연준은 이달 26~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6월과 같은 0.75%p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한번에 1%p를 올리는 파격행보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연준은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4% 이상 수준으로 올릴 것임을 예고한 상황이다.

당초 연준은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3.8%까지 올릴 것이라고 시사했으나 이를 올 연말로 앞당길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불경기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가잡기에 총력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그러나 파격적인 연쇄 금리인상에도 PCE가 현재 6.3%에서 연말 5.2%로 1%p 낮추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결국 미국경제는 불경기 진입을 공식 선언하고 나서도 최소한 1년 혹은 1년 반 동안 5~6%대의 고물가, 고유가, 4%에 가까운 고금리에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연준이 이를 가볍고 짧은 불경기로 단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 전략, 경착륙 피하고 물가 잡기

애틀랜타 연은이 미국경제가 이미 불경기에 빠졌다고 자체 진단한 가운데 파월 의장이 불경기를 감수하고라도 공세적인 연속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잡겠다고 다짐한 것은 연준의 목표와 전략이 수정됐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전문가들은 연준의 목표가 '불경기 없는 물가 잡기'에서 '물가 잡고 대침체 막기'로 변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애나 웡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연준이 경기에 영향을 주더라도 물가를 잡을 때까진 통화긴축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이번에 침체가 발생하면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 애널리스트 출신의 로버트 덴트 노무라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올 4분기부터 내년까지 마이너스 2% 정도의 성장을 예상한다"며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겠지만 경기후퇴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 주요 언론들은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8개월 동안 겪었던 '대침체'(Great Recession) 시절의 경제지표를 상기시키며 당시 상황의 재연만은 막아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현재의 미국경제 상황이 2008년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 대침체 같은 경착륙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즉 2008년 대침체처럼 2분기 이상 GDP가 마이너스 1% 이상 추락하고 실업률이 10% 안팎까지 치솟는 대재앙만큼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아직은 우세한 상황이라고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미 경제는 2008년 1분기 마이너스 1.6%, 2분기 플러스 2.3%, 3분기 마이너스 2.1%, 4분기 마이너스 8.5%의 경기후퇴를 겪었다. 실업률은 9.5~10% 수준으로 치솟았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