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물가급등을 잡기 위한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미국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다. 수요를 냉각시켜 공급난과의 격차를 줄이면서 물가를 잡아보겠다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힘겨운 시도가 성공하기 앞서, 소비지출과 기업생산투자 위축, 이에 따른 경제성장 후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준이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가볍고 짧은 불경기를 감수하더라도 물가를 반드시 잡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다만 불경기를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2008년식의 대침체(Great Recession) 만큼은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너스 4% 이상 성장률 후퇴와 실업률 10% 급등을 보였던 2008년 대침체와는 달리 이번에는 마이너스 1%대 후퇴, 4%대 실업률로 가볍고도 짧은 불경기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샴버그시의 한 식당에 '직원 고용' 팻말이 걸려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2008년과 달리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주택시장과 금융시장 붕괴는 없을 것이고, 구인난을 겪어온 고용주들이 대량해고 대신 직원 유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 하루아침에 고용이 급감하고 실업률이 급등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상반기 고용시장 선방

고물가 고금리 등 각종 악재가 있지만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은 여전히 강력한 고용시장이다. 미 연방노동부가 8일(현지시각) 발표한 6월 실업률은 3.6%였다. 올 3월부터 4개월 연속 3.6%를 기록, '사실상의 완전고용'을 유지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 실업률 3.5%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다. 3.5% 실업률은 누구나 원하면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완전고용 때나 볼 수 있는 낮은 수준이다.

미국 고용지표에서는 실업률보다 한달에 몇개의 일자리를 늘렸느냐가 더 중요하다. 6월 한달 동안 37만2000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이는 수정된 5월의 고용증가분 38만4000개보다는 1만2000개 적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치 25만개 증가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로써 미국경제는 올 상반기 동안 월 평균 40만개 이상씩 일자리를 늘렸다. 각종 악재 속에도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6월 업종별 고용을 보면 생산·서비스 분야의 거의 모든 업종이 고른 증가를 기록했다. 생산 분야에서 △제조업 2만9000명 △건축 1만3000명 △광업 5000명이 늘어나는 등 전 업종이 호조세였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프로페셔널 비즈니스업 7만4000명 △레저·호텔·식당업 6만7000명 △헬스케어업 5만6700명 △수송저장업 3만5500명 △정보업 2만5000명 △교육 1만8000명 △도매업 1만6400명 △소매업 1만5400명이 늘었다.

정부 분야에서는 연방정부가 1만3000명, 주정부가 1000명을 감원한 반면 로컬정부에서 5000명을 늘렸다. 이를 종합하면 정부 고용 분야에선 9000명이 줄었다.

고용 호조 덕에 연속 금리인상 가능

6월 고용성적이 호조세를 기록한 덕에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계속 단행할 수 있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준은 이달 26~27일에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0.75%p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공식적으로 연준은 현재 1.5~1.75% 수준인 기준금리를 연말 3.4%까지 인상할 것임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를 역산하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이달 FOMC회의에서 0.75%p, 9월 21일 회의에서 0.5%p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11월 2일과 12월 14일에 0.25%p씩 올릴 가능성이 크다.

경제분석가들의 추산대로 금리인상이 단행되면 연말 미국 기준금리는 3.5~3.75%로 4%에 육박하게 된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3.4%까지 올릴 경우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현재의 6.3%에서 5.2%로 1.1%p 낮아지고 경제성장률은 1.7%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물가잡기에 미흡하다는 판단을 내리면 연준이 한번에 1%p를 올리는 광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연말 기준금리가 4%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후퇴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미국 실업률은 올 연말 3.9~4.6%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는 견고해 보이는 미국 고용시장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6월 고용지표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지만, 테크업종에 이어 월가 금융권에도 대량감원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때문에 고용시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민간업계의 해고 현황을 추적하는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가 집계한 결과, 올 상반기 미 업계는 13만3211명을 해고했다. 그중 해고시즌을 맞은 자동차업계는 6월에만 1만여명을 해고했다. 상반기 전체 해고된 노동자는 1만5578명이었다. 자동차업계의 해고 숫자는 전년 대비 155% 급증한 것이다. 이에 앞서 테크업종도 올 상반기 3만5000명을 감원한 바 있다.

CNBC방송과 WSJ는 "여기에 증시폭락으로 실적부진에 빠진 월가 금융투자은행들이 7월과 10월, 11월 등에 걸쳐 대량 감원을 단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일자리 증가폭이 상당히 둔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흐름이다.

연방노동부가 매주 집계하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이미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해 해고태풍이 실업수당 청구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동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3만5000건으로 집계됐다. 전주 23만1000건에서 4000건 늘었다. 올해 1월 15일 이래 최고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한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1만8000건이었다. 팬데믹 완화 후 전반적인 회복세를 타다가 올 들어 다시 불안해졌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보다 한주 늦게 나오는 '실업수당 수여 실직자' 통계는 137만5000명으로 전주보다 5만1000명 늘었다.

고용 유지해야 가볍고 짧은 불경기 가능

소비지출 비중이 70%인 미국경제에서 고용시장이 흔들리면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연준의 통화정책도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경제가 올해와 내년 경기침체를 겪게 되더라도 사상 최초로 대량 해고사태 없이 고용이 유지되는, 과거와는 판이한 모습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성장후퇴 상황에서도 실업률 급등만 없으면 미 국민이 계속 지갑을 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물가를 잡는 동시에 불경기를 가볍고 짧게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