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팬데믹 이후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근무환경에 일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상당수 회사들이 전 직원을 주5일 출퇴근시키는 예전의 근무형태로 되돌아가지 않고 있다. 대신 재택근무를 계속하다가 협업을 해야 할 때만 출근시키는 '하이브리드 근무'로 대거 바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2일 보도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구인구직박람회'에 참가한 구직자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의 상당수 회사들은 5일 중 적어도 3일은 재택근무를 하고 하루이틀은 사무실에 모여 협업하는 형태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가폭등, 물가급등 와중에 주5일 출퇴근하게 되면 생활비가 많이 들어 다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협업시에는 효율성이 높은 사무실 출근 근무를 하는 게 낫기 때문에 재택과 출근을 혼합하는 형태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근무환경 변화로 상당수 고용주들은 사무실 전체 규모를 예전보다 줄이고 내부 공간도 개인 책상으로 채우는 대신 협업에 필요한 테이블식 탁자를 배치하는 등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상당수 고용주들이 전체 사무실 규모를 절반 또는 1/3로 대폭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또 관련 부서별로 협업을 위한 출근일을 달리할 수 있어 하루에 전체 공간의 25%만 가동해도 되므로 경비도 절약할 수 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건물주들은 근무형태를 혼합형태로 바꾸려는 회사들이 오래된 건물을 기피하고 있어 리모델링이나 수리를 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나지만 공실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에서 혼합형태 근무로의 전환에 안도하고 있다고 WSJ이 전했다.

새로운 근무 형태의 확산으로 고유가 시대에 출퇴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직원들의 교통비와 보육비, 회사 경비를 동시에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의 일자리 안정, 물가 진정에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재택+출근' 혼합 직장근무 형태 급변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자 보도에서 "주5일 중 출근율이 가장 낮은 요일은 금요일로 평소의 30% 수준"이라며 "월요일은 출근율 41%, 목요일은 46%, 화요일과 수요일은 50%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금요일 미국 전역에서 텅 빈 사무실이 급속히 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씨티그룹과 대형 회계법인 KPMG 등은 금요일에 줌 화상회의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근무형태를 바꿨다.

금요일에 출근시키지 않는 회사들 중 다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한주일을 마무리하도록 정책을 바꿨고 일부는 아예 월~목요일 주4일제로 변경했다.

다만 직원들간 근무교체 필요성으로 금요일에 모일 경우 가벼운 평상복 차림으로 나와 무료점심을 제공받고 오후 2~4시에 해피아워를 설정,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채택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는 주5일 중 2~3일은 재택근무를 하고 1~2일만 출근하는 형태가 많다.

물론 대면서비스가 필수인 직종은 하이브리드나 주4일제 근무 변화가 어려운 형편이다. 오히려 주말 근무자를 별도로 고용해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탓에 고용주들의 부담이 늘고 있다.

아울러 하이브리드 근무로 금요일 텅빈 사무실 현상이 확산되면서 회사 주변의 식당과 가게, 주차장 등 관련 업소들이 울상을 짓는 역작용도 나타났다.

재택근무 대신 임금인상 자제 확산

한편 재택근무를 늘리는 대신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CBS방송은 13일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의 근로자 82%가 재택근무를 원한다"며 "특히 재정과 보험, 부동산, 교육과 소셜서비스 업종 등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에서는 팬데믹이 완화되면서 사무실 출근으로 복귀하려다 물가급등 때문에 재택근무를 지속하는 회사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들 직종의 근무자들 중에는 '주 2~3일 재택근무가 허용되면 임금인상자제나 동결, 심지어 인금삭감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간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대신 임금인상은 자제키로 합의하는 회사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CBS는 전했다.

근로자들은 주 2~3일을 재택근무하게 되면 출퇴근 비용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효율적 시간쓰기가 가능할 뿐 아니라 자녀 보육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불경기의 시작과 종료를 선언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최근 보고서는 "재택근무와 임금인상 자제를 연계하는 직종과 회사들이 확산되고 있으며 임금인상 자제로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NBER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업체들의 과거 12개월간 임금인상률은 평균 5.4%였으나 향후 12개월간 예상하는 임금인상률은 4.9%로 낮아졌다.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9.1% 급등한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금융과 보험, 부동산 등 재정활동 분야의 회사들 가운데 과거 12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확대했다는 비율은 50.4%에 달했다. 또 52.6%의 회사들은 향후 12개월 재택근무를 계속 허용 또는 확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교육과 헬스케어, 소셜서비스, 정보업종에서도 45.2%가 재택근무를 확대했고 41.9%가 앞으로도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NBER 보고서는 노사가 2년간 재택근무 대신 임금인상 자제를 합의한 결과 임금인상률은 지난 1년간 0.9%p 낮아졌고, 향후 1년간 1.1%p를 낮추는 등 모두 합해 2%p를 인하하는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근로자들은 평년의 경우 매년 2~3%씩 임금을 인상했다. 최근 물가급등으로 6~7%의 대폭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임금인상 자제 합의로 2%p를 낮춰 5% 안팎의 임금인상률에 타협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보고서는 "지나친 임금인상으로 고용비용이 높아지면 상당수 고용주들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게 된다. 이는 결국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며 "하지만 근로자들이 원하는 재택근무를 지속하는 대신 임금인상을 자제하게 되면서 물가잡기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