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일본에선 노동력이 부족해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는다고 하는데 왜 임금이 오르지 않나?" 일본경제에 대해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사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인자 수/구직자수)은 코로나 위기에도 최근까지 계속 1을 넘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보다 기업의 모집 인원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임금(구매력평가환율로 계산)은 지난 30년간 거의 늘지 않았다. 2015년 이후엔 한국보다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의 '2019년 국민생활기본조사'에 따르면 가계 연평균소득의 경우 전국 평균치인 552.3만엔을 밑도는 가계가 61.1%에 달한다. 가계소득 중앙치는 437만엔에 그쳐 20년 전에 비해 100만엔 정도 적었다.

아베노믹스의 대기업 지원 정책으로 부유층이 혜택을 받았다는 비판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재분배소득 지니계수'(세금징수 및 사회보장 지급 후 수치)는 2017년 기준 0.37로 1990년의 0.36과 큰 차이가 없다.

'당초소득 지니계수'는 1990년의 0.43에서 2017년 0.56로 30% 이상 악화됐다. 고령화에 따른 고령층 연금지급 확대 등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재분배소득 지니계수의 상승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세전소득에서는 격차가 확대됐다.

임금정체→기업매출 부진→투자위축

일본 가계소득의 정체는 중산층 가계소득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정부는 장기불황을 맞아 비정규직을 대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저임금 근로자가 양산되면서 빈곤층 확대의 원인이 되자,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점차 강화해왔다.


이에 따라 새로 입사하는 젊은층 임금은 소폭의 상승기조를 보였으나 원래 임금수준이 높았던 중간간부 인력의 임금은 감소경향을 보였다. 특히 40~59세 세대주의 연간소득은 지난 20년 동안 큰 폭으로 줄었다(그림 참조). 일본기업들이 수익개선 이후에도 연봉제 도입 등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개편해 구조조정에 주력하면서 중간관리층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감소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계층의 세금 및 사회보장비용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일본기업의 수익개선 원동력은 원가절감 등 구조조정 전략이었다. 때문에 기존 업무의 비정규직화 등으로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 반면, 고소득 사무직 등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줄었다. 노동력 부족 속에서 임금정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임금정체와 중산층 쇠퇴는 경제성장 부진, 기업매출 감소 우려를 낳았다. 이는 결국 일본기업의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저임금 심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중산층의 소득감소 경향은 임금근로자 가계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가계에서도 나타난다. 그림에서처럼 70세 이상 세대주 가계의 연간소득은 지난 20년 간 18.8% 감소했다. 여기에는 고령 자영업자의 소득감소 요인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일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심화됐다. 일본 경제주간지 '주간다이아몬드'의 2011년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와세다대학교의 하시모토 교수는 자영업자 및 농가의 소득이 2019~2020년 15.8% 감소했다고 추정한다.

일본산업을 지탱하는 중소 제조기업 중 특수기술의 강점으로 고수익을 유지하는 곳도 있지만 하청기업의 경우 대기업의 생산 축소와 해외 이전 등으로 매출과 수익이 악화된 곳이 많다. 특히 일본 전자산업계는 장기불황기에 디지털 흐름에 동참하는 데 실패하면서 생산성 하락을 겪었다.

이 때문에 각 지방 경제권의 중소 하청기업, 음식점 등 생활관련 자영업 등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영향이 커지면서 각 지역 상권이 공동화되고 자영업 매출 및 수익이 감소세를 보였다.

저소득화 악순환 극복 방법 있나

중산층을 비롯한 전반적 계층의 저소득화 경향을 극복하는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쉽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정부의 분배정책은 당초소득 지니계수의 큰 폭 악화에서 나타난 불평등도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중산층의 조세부담을 늘린 측면도 있다. 중산층 쇠퇴는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빈곤층 대책으로 △최저임금 인상 △의무교육 보조 △생활보호 정책 등이 있지만 중산층 대책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중산층 쇠퇴를 막는 방법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보조금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으로 좋은 일자리 확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직업교육 강화 등이 강조된다. 고임금 고소득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일본기업들이 인원감축과 연공서열 약화 등 임금체계의 하향화로 대응하기보다 새로운 산업과 제품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소비자의 한계효용 체감을 고려하면 기존 제품과 산업을 아무리 합리화한다 해도 시장확대와 임금상승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장기불황 이후 보수적인 경영을 강화해온 일본기업들이 이제는 투자를 확대해 새로운 혁신분야에 도전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디지털혁명과 그린혁명을 통해 산업혁신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화할 전망이다.

2조엔에 달하는 그린이노베이션 기금을 조성하고 20조엔 규모의 녹색전환(GX) 이행채권을 발행해 일본산업의 탈탄소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들 분야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로 혁신에 대한 일본기업의 과소투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몰락하는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 지원, 디지털화 지원, 스타트업 육성책도 과제로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재정확대 통한 수요확대 효과 미지수

한편 수요창출 정책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경단련 산하 21세기정책연구소는 지난달 '중산층 부활을 위한 경제재정운영의 대전환'이라는 보고서에서 "일본경제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확대 등을 통해 수요확대에 지속적으로 나서야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며 '고압경제' 정책을 제시했다.

다만 단순한 거시경제정책 차원에서 재정을 확대해 수요를 창조하는 것만으로 혁신 유발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일본정부가 그동안 실시한 재정확대 금융완화 정책이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압경제 정책으로 수요확대 효과가 나타날 경우, 미국 등의 최근 상황처럼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다.

일본의 고민을 보면 우리나라도 저소득층 지원책과 함께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전반적인 소득증대 정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산업을 위한 혁신 촉진책에 주력해야 한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