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98% 대상, 고용유지조건 대폭 완화

국회입법조사처 "사회적합의와 투명성 필요"

윤석열정부가 가업상속세를 대폭 완화했다. 재계는 크게 환영했다. 반면 시민사회는 '부자감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입법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기획재정부가 21일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매출 1조원 기업도 최대 1000억원의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10년 이상 경영을 유지해 온 매출 4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만 가업상속공제 대상이었다. 공제액도 최대 500억원이었다.


가업영위 기간에 따라 10년 이상 기업은 공제한도를 20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20년 이상 300억원에서 600억원, 30년 이상 500억원 1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상속세 부과 시 최대주주 지분가치를 20% 할증하는 최대주주 주식할증평가에서도 중견기업을 빼기로 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대기업)만 적용 대상으로 남긴다.

최대주주와 지분 50%(상장법인 30%) 이상을 10년 보유하도록 하던 것을 최대주주와 지분 40%(상장법인 20%) 이상 10년 보유로 완화했다.

◆자산처분 제한기준 크게 완화 = 사후관리 기간도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업종·고용·자산유지 요건도 크게 낮췄다. 특히 '매년 정규직 근로자 수 80% 이상 또는 총급여액 80% 이상'의 고용유지 조항은 삭제했다.

7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 100% 이상 또는 총급여액의 100% 이상 유지 조항도 5년 통산 90%로 줄였다. 반면 자산처분 권한은 늘려줬다. 가업용 자산처분 제한기준은 20%(5년 이내 10%) 이상에서 40%로 완화했다.

이번 상속세 개편안은 중견기업계가 그동안 제시한 의견이 대폭 수용된 결과다. 개편안이 통과되면 중견기업의 98% 가량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중견기업은 5526곳이며 이 중 연매출 1조원 이상인 기업이 107곳으로 약 1.9%를 차지한다.

재계는 크게 환영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21일 논평에서 "세대 간 폐쇄적 부의 이전이 아닌 '공공재로서 경영 노하우 전수'와 기업 영속성의 가치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향후 국회입법 과정에서 대한민국 공동체의 긴박한 요구와 장기적 필요에 기반한 수준 높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중소기업 가업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및 상속공제 한도 확대 등은 막대한 조세부담으로 승계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준다"며 환영했다.

중기중앙회는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맞게 업종에 제한 없이 투자를 늘릴 수 있게 업종변경 제한 요건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입법 과정 진통 예상 = 하지만 정부 개편안은 국회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시민사회와 일부 학계에서 '부의 승계' 입장이 여전하고 제도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 이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간한 '제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 현안 보고서'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성과에 대한 검증과 확대의 사회적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직까지 상속공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또 기업의 도덕성 해이 방지와 투명성 확보 필요성도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상속세 절감 혜택을 부여하면서 사후관리를 통해 기업으로 하여금 공익창출의무를 부담케 하고 있다"면서 "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사후관리 결과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정부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정책제안에서 "상속은 증여와 함께 경제적 가치가 있는 부를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가업의 요건과 공제대상 기업기준이 넓고, 공제한도가 너무 높아 일부 고액 자산가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수 출신 중소기업전문가는 "중소기업 대부분은 비상장 기업으로 경영투명성이 취약하고, 상당수 중견기업들에서는 대기업처럼 일감몰아주기 행태가 만연하다"면서 "혜택 확대보다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방안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연구소장은 "이번 개편안은 그간 가업승계제도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없는데도 부자사업자들의 민원을 수용했다"며 "중요한 정책일수록 국민경제적 효과를 고려해 객관적인 평가를 한 이후에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2년 세제개편안 분석" 연재기사]

김형수 서원호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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